남쪽 지방에 가서 대나무를 보았다. 찬바람이 대숲을 지나갈 때 대나무는 그 바람을 품으로 다 안았다가 바깥으로 모두 내보내곤 다시 의연하게 곧게 서는 것을 보았다.
새해 달력을 벽에 걸었다. 달력을 걸고 나니 아무것도 들여놓지 않은 빈방의 시간을 홀로 맞은 것만 같았다. 법정 스님은 한 산문에서 이렇게 썼다. "며칠 전에 도배를 마쳤는데 아직 빈방인 채 그대로 있다. 방석이나 경상, 다구 등 아무것도 들여놓지 않았다. 나는 이 빈방의 상태가 좋다. 거치적거릴 게 없는 텅 빈 공간이 넉넉해서 좋다" 법정 스님은 간소한 살림살이를 빈방에 빗대었고, 욕심이 적은 마음을 방에 비유했지만 어쨌든 해가 바뀌니 빈방에 들어선 기분이다.
이 텅 빈 방에 한 해 동안 많은 것을 들여놓게 될 것이다. 빈방에 무엇보다 새해 달력을 처음으로 들여놓았다. 달력을 따라 새봄과 연두의 빛깔이 오고, 매미 소리와 폭염이 오고, 가을 풀벌레 소리와 둥근 달이 떠서 오고, 첫눈이 엽서처럼 찾아올 것이다. 작년에 왔던 것과 엇비슷한 일들이 오기도 하고, 또 아주 딴판인 일들이 오기도 할 것이다. 높은 파도와 같은 고통이 오기도 하고, 분수처럼 기쁨이 쏟아지기도 할 것이다. 누군가와는 영영 이별을 하고, 누군가와는 새로이 만나게도 될 것이다.
언젠가 읽은 글에 따르면, 한 스님은 새해의 달력 앞에서 세 가지를 실천하면서 살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미소, 검소, 간소가 그것이었다. 미소는 친절하자는 뜻이고, 검소는 아껴서 쓰자는 뜻이며, 간소는 불필요한 일을 줄이자는 뜻이라고 했다.
나는 올해 무외시(無畏施)를 실천했으면 한다. 무외시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두려움을 없애주는 일을 이른다. 다른 사람이 공포에서 벗어나게 돕고,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것을 뜻한다. 온기 있는 말을 나누고, 호의의 마음을 나누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재벌이라면/ 메마른/ 양로원 뜰마다/ 고아원 뜰마다 푸르게 하리니/ 참담한 나날을 사는 그 사람들을/ 눈물 지우는 어린것들을/ 이끌어 주리니/ 슬기로움을 안겨 주리니/ 기쁨 주리니." 김종삼 시인의 '내가 재벌이라면'이라는 시이다. 이 시에서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메마른 삶의 영토를 푸르게 하고, 참담하고 눈물 흘리는 이의 마음을 기쁨으로 이끌어주는 것 또한 무외시일 것이다.
얼마 전 성탄 전야 미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 말씀은 감동적이었다. "아기 구유 앞에 섰을 때 우리는 생명을 위한 양식은 물질적인 부가 아니라 사랑이며, 탐욕이 아니라 자선이고, 호화로운 겉치레가 아니라 소박함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하셨는데, 사랑과 자선과 소박함의 실천이 또한 무외시의 내용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삶은 좋은 기운으로 점차 회복될 수 있다. 초승달이 내부에 밝은 빛을 가꿔 보름달로 점차 커 가듯이. 가만히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을 위하고 돕는 모든 일은 결국 나를 돕는 일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너그러운 마음을 쓰는 일은 너그러운 내가 되는 일이기도 한 까닭이다. 난초가 꽃을 피우게 돕게 되면 그 난초의 은은한 향기가 나의 방에 가득 차서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