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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친 그리움을 어찌 더 묻어두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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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서울 갔다 올 거면 정구공 하나 사다 줘야 해! 만일 사 오지 않으면 누나라고 부르지 않을 테야, 알았지!"

6·25전쟁이 발발한 1950년 겨울 갓 결혼해 남편을 따라 피란길에 나선 어머니는 치맛귀를 붙잡고 동구 밖까지 쫓아 나와 손을 흔들던 막냇동생을 아직껏 가슴속에 담고 사신다. "그래, 누나가 꼭 약속 지킬게 걱정 마!" 그해 어머니가 스무 살이었으니 띠가 같던 외삼촌은 여덟 살 어린애였다. 어머니는 60여년이 지난 요즘도 동생의 마지막 모습이 눈에 선하다며 눈물을 찍어내시곤 한다.

 "얼마나 나를 기다렸을까? 철석같이 한 약속을 아직도 지키지 못하고 있으니 이 나이가 되도록 누나 소리 한번 못 듣고 사는 거지! 당시엔 길어야 서너 달이면 돌아갈 줄 알았지, 이렇듯 호호 할머니가 되도록 못 볼 줄 누가 알았겠느냐." 어머니는 종종 혼잣말로 중얼거리셨다.

어머니 고향은 황해도 금천군 외유면 문수리다. 서울서 승용차로 한 시간 남짓이면 닿을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도 가볼 수가 없으니 생각할수록 가슴이 저리다. 몇 해 전 어머니께 금강산 관광을 권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척인 고향 땅도 못 가보면서 무슨 흥에 명산 구경을 다니겠느냐"며 한사코 마다하셨다.

 "그저 죽기 전에 고향 땅 한번 밟아 보는 것이 소원인데 가능할는지. 그마저 안 된다면 멀리서 까치발로 얼핏 보기만이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이젠 나이가 많아 이도 저도 다 틀리지 않았나 싶다." 얼마 전 이산가족 상봉이 다시 불투명해졌다는 뉴스에 어머니는 체념한 듯 나직이 말을 이었다.

 "사변이 나던 그해 겨울 날씨가 얼마나 매섭던지 솜저고리 속을 파고드는 추위는 지금 생각해도 몸서리가 쳐져. 서울 다 오도록 두고 온 부모님과 동생들 생각에 울다 걷다 정말 죽을 맛이었지. 휴전이 되고 서울에 정착하고도 먹고사는 일은 왜 그리도 팍팍하던지 오죽하면 십 년 넘어 밥술이나 먹게 될 때까지 피란 나온 게 후회가 돼 스스로 발등을 찧고 싶었다니까. 하지만 그땐 이를 악물고 살아선지 그리움은 가끔 도지는 위장병같이 그런대로 감당이 되더라고. 다만 무심한 세월만 사정없이 흐르고 말았지. 그런데 요즘엔 환한 달만 쳐다봐도 새록새록 그리움이 사무쳐 눈물에 달빛이 번지는 거야. 부모님이야 진즉 돌아가시고 안 계시겠지만 고향 집이 어제 본 듯 또렷하고 올망졸망 동생들 모습도 선연히 떠오르니 도대체 어찌 된 노릇인지. 이젠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아 그럴 테지 하다가도 정작 살아생전에 만나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희망의 끈이 놓아지질 않네."

착 가라앉은 어머니 목소리는 영화의 비감한 대사처럼 가슴속을 파고들었다. 이산가족 상봉을 추진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부모님은 '혹시' 하는 마음으로 전화기 옆을 온종일 서성거린다. 하지만 100명 정도의 상봉 인원으로는 늘 하늘의 별 따기다. 1000만명이 넘던 이산가족이 이제 불과 7만여명, 그것도 1년 평균 3000명 이상 세상을 뜨고 있는 실정을 감안한다면 숫자를 늘린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는 시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열렸다. 신문과 방송마다 그 곡진한 사연들을 소개하느라 온종일 떠들썩했다. 한없이 부러운 듯 TV에 바짝 다가앉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어머니의 작은 어깨가 가여워 눈이 뿌옇게 흐려졌다. 나는 간간이 들썩이는 그 어깨를 감싸 안으며 "저것 보세요, 어머니! 건강하게 오래 사시면 꼭 좋은 날이 올 거예요. 잘되면 금강산이 아닌 고향 집에서도 외삼촌과 이모들을 만날 수 있게 될지 몰라요. 그땐 우리 모두 데리고 함께 가세요." 짐짓 들뜬 목소리로 위로의 말을 건네자 "하지만 더 늦으면 안 돼! 세월을 붙들어 놓고 사는 사람이 있다더냐. 그나마 몸이 이만할 때 가야지 더 늙고 병들어 움직이지 못하게 되면 가볼 수나 있겠니? 이런 급한 사정들을 알고도 이쪽이나 저쪽이나 서둘러 주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 그게 딱한 노릇이지" 하며 혀를 차셨다.

맞다! 나만 하더라도 그토록 오매불망 가고 싶어 하시는 부모님을 모시고 가야 그곳이 내게도 고향이 되는 거지, 그분들께서 모두 떠나고 안 계신 후에 통일된들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하물며 유골함을 끌어안고 생전 보지도 못한 일가친척을 만나러 간다면 그 얼마나 기가 막힐 것인가. 통일은 반드시 돼야 하지만 더 중요한 점은 하루라도 빨리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평생 응어리진 그리움을 한 짐 가득 등에 지고 세상을 떠나는 실향민의 피맺힌 한(恨)을 생각하면 그 이유는 분명하다.

부디 더 늦기 전에 한 바구니 가득 정구공을 싸 들고 찾아간 어머니에게 막내 삼촌이 부르는 '누나' 소리를 꼭 들려 드리고 싶다.

조헌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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