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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윤 민 제


    오늘도 어제와 똑같다.

    아침에 눈을 뜨면 어젯밤 잠시 멈췄던 일상이 다시 계속되는데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다. 이렇게 살다가는 백세는커녕 천 살도 넘게 살지 않을까?

    내가 스무 살 어림에 예순 살이 넘은 노인을 보면 너무 추하고 사람 같지도 않아 보여서 난 60세 이전에 꼭 죽으리라 마음먹었다. 내가 서른 살이 되는 해 여름에 아버지께서 54세의 연세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지병도 없으셨는데 밤사이에 심장마비가 일어났던 것이다. 무척이나 존경하고 의지하던 아버지가 졸지에 돌아가시자 청천벽력 같은 충격을 받았다. 더구나 오는 가을에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기가 막히는 슬픔과 앞이 캄캄한 근심에 잠기는 와중에도 아버지는 과연 멋진 분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헤집고 들어왔다.

    예정대로 그 해 가을에 결혼하여서 아내에게 나도 아버지처럼 60세가 되기 전에 죽을 거라고 말했다. 아내가 펄쩍 뛰면서 말이 씨가 되어 정말 그렇게 되면 어쩌려느냐? 며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애원하였다. 바로 그거였다. 내가 60 전에 죽으리라 맘 먹는다고   해서 그대로 이루어지는 건 아니잖은가. 환갑 전에 자살이라도 하지 않는 한. 그래서 60 전에 죽겠다는 말을 끈질기게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런데 지금 내 나이 80을 넘겼는데도 아직 멀쩡하게 살아 있다. 내 말엔 씨가 없고 말이 말 같지 않단 말인가?


    1990년대, 21세기를 4~5년쯤 앞두고 공포의 루머가 온 세상을 덮쳤다.

    서기 2000년이 되면 컴퓨터가 숫자를 잘못 읽어서 모든 분야에 혼란이 생기고 재앙이 일어나 지구가 소멸한다고 겁을 주었다. 이를 뒷받침하듯 노스트라다무스가 1999년까지의 예언만 했을 뿐 그 이후의 언급이 없다는 말도 돌았다. 그리고 퍼시 콜렛이란 나이 많은 목사님은 죽어 천국에 가서 예수님을 만났는데 ‘내가 곧 세상에 가리라’는 말씀을 듣고 돌아왔다며 여기저기 다니면서 전파하였고, 한국 초대형교회의 조용기 목사님은 일본에 가서 택시를 타고 가는데 한 청년이 느닷없이 옆자리에 올라타더니 ‘예수님이 곧 오십니다.’ 하고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는 말을 했다고 전해졌다.


    또 자칭 선지자 하방익이란 소년이 나타나서 세기 말 어느 날인가 날짜까지 분명히 밝히며 예수님이 재림하시어 세상을 심판하신다고 예언하였고, 홍의봉이란 영화감독은 신의 계시를 받았다며 세기가 바뀌기 전에 말세가 닥쳐온다는 저서를 출판하기도 했다, 매스컴에서는 세기가 바뀔 적마다 흉흉한 루머가 아무 근거도 없이 나도는 법이니 동요하지 말라고 민심을 진정시키려 하였으나 세기말이 가까워 올수록 많은 사람들이 불안에 떨었다. 나도 조금 불안한 건 사실이었지만 어차피 내 뜻에 어긋나게 60은 살짝 넘겼으니 차라리 몇 년을 더 살다가 온 인류와 다 함께 사라진다면 오히려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21세기에 들어서서 지구는 강산이 한 바퀴 반이나 변하도록 별 탈이 없이 돌아가고 나는 여전히 이 땅에 발붙이고 살아 있지 않은가.


    봄이 오면 나무가 싹을 틔워서 여름에 초록색 잎으로 옷 입지만 가을이 되면 잎사귀가 빨강 노랑으로 색이 바래고 헤져서 겨울엔 헐벗고 오들오들 떤다. 꽃들도 몽우리가 활짝 피어서 예쁜 얼굴을 하고 미소를 짓지만 한 철을 못 넘기고 쭈글쭈글 주름이 생겨서 스러지고 만다. 오늘이 어제와 똑같은 것 같지만 해묵은 사진을 끄집어내보면 남의 사진을 보는 것 같다. 어느새 이렇게 쭈그렁 영감이 되어버렸는가?    


    지금은 60세 노인이 옛날처럼 추해 보이지가 않다. 80이 넘은 눈에는 청춘으로 보인다. 그러나 가끔 해골 같은 얼굴로 휠체어에 얹혀 다니는 추한 노인의 모습을 볼 때면 내가 저 꼴이 되도록 살면 어떻게 하나 하고 한숨이 나온다. 내 손발로 운전을 못하여 어디에 갈 적마다 자식들의 차에 짐짝처럼 실려 다니게 된다면 얼마나 비참할 것 인가. 그런데도 지금 별로 죽고 싶은 마음이 없다. 해마다 늘어나는 수명의 평균연령을 따라 가노라면 100세가 넘도록 살지도 모른다는 망상까지 든다. 20대의 오기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철없이 알량한 자존심을 내세운 오만이었던 것이다. 오만은 어리석음의 다른 이름이다. 사람의 목숨이 천하보다 귀함을 몰랐다. 죽음이 인생을 결산하는 심오함도 몰랐다. 세상에 죽음보다 더 높은 수준이 어디 또 있으랴. 부귀와 명예와 권세가 죽음 앞에서는 모두 머리를 숙이지 않는가?   

    요즘 친지들의 부음을 하루가 멀게 자주 듣는다. 연하인 친지의 죽음 소식을 들으면 그들의 수명을 뺏어다가 내 나이에 보태는 것 같아서 죄스럽다. 그런데도 난 곧 죽을 것 같질 않다. 죽음은 아직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매일 밤 잠자리에 들 적마다 내가 내일 아침에 눈을 뜨게 될까 하는 조바심을 떨칠 수가 없다. 무얼 하나 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거나, 뭔가 한 가지 시작하고픈 유혹이 생겨도 이제 살면 얼마나 살겠다고, 하는 체념이 마음을 내리 누른다.


    스피노자가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나는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한 말에 머리는 끄떡여지지만 가슴은 공감을 못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아직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이 신통하게 느껴진다. 지난밤 내 옆에 잠들어 있던 아내의 잠자리가 비어 있는 걸 보면 오늘도 몸이 움직여서 침실을 빠져나갔구나 하고 안도감이 든다.


     하루라도 더 살고 싶어서 바동거리다가 어제 죽은 사람의 내일이 바로 오늘 아닌가. 오늘도 어제와 똑같이 침실의 창에 부딪치는 햇살을 보며 눈을 뜰 적마다 감사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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