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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친구들의 뒷모습

“우리 반 아이들 몇몇은 학교에 와서 아침 첫 수업 시간에 엎어져서 잠이 들었네. 지난밤에 잠을 안 자서? 아니야. 술에 취해서야. 초등학교 1학년이!”

“맞아 맞아. 우리 학교에서도 술 취해 자는 학생이 많았어.”

안동소주 양조장 담장 밖엔 팔뚝만 한 양철 파이프가 튀어나와 거기서 시커먼 소주 찌꺼기, 아래기(‘아랑주’의 경상도 사투리)가 하수구로 졸졸 쏟아졌다. 가난한 집에서는 그걸 양동이로 받아가 사카린을 넣고 솥에 끓여 한 끼 식사로 때웠다. 아래기 하수구 앞엔 새벽부터 양동이가 장사진을 이뤘다.

막걸리 한 잔을 들이켠 친구가 “보릿고개에 나도 그걸 먹었어” 한다.

분위기가 숙연해지자 한 친구가 “참 세상 좋아졌지. 요즘은 유통기한이 하루 지났다고 멀쩡한 음식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세상이 변해도 어찌 이렇게 변할 수 있는가.”

며칠 전 고향 친구들 일곱이 안동국시 집에 모여 막걸리 잔을 돌리며 모두가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절 고향으로 돌아갔다.

“한겨울 밤 머리맡에 둔 물그릇이 깡깡 얼었는데 요즘은 엄동설한에도 아파트 안에서 반팔로 지내니….”

“우리 어릴 때 겨울은 요즘과는 달랐지. 흙길이 쩍쩍 갈라지고 핫바지 저고리 소매 속으로 찬바람은 어찌 그리 들어오던지. 팔뚝이 잘려 나가는 것 같았지. 지난달에 옷장 정리를 한다고 버릴 옷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는데 그 시절에 지금 버리는 옷 하나라도 있었더라면….”

“우리 동네 통틀어 전화 한 대가 우리 집에 있었지. 저녁나절 따르릉 요란하게 울리는 전화를 아버지가 받아 주찬네 아제를 불러오라는 거야. 신발을 걸치는 둥 마는 둥 나는 단걸음에 고샅길을 돌아 논둑길을 질러 주찬네 집을 보고 냅다 소리 질렀지, ‘아재요, 주찬이 전화요.’ 나는 가쁜 숨을 가다듬느라 허리 숙여 헉헉 대는데 마당 설거지를 하던 주찬네 아부지는 빗자루를 던지고 벗겨진 고무신 한 짝을 버려둔 채 우리 집으로 달려가 전화를 받아. ‘그래, 별 탈 없나? 몸은 성채? 그래, 우리 집은 별일 없다.’ 뒤따라온 주찬네 엄마는 벌써 눈물을 훔치다가 전화를 바꿔들고 ‘주찬아…’ 목이 메어 말을 못 잇자 ‘아, 전화비 올라, 끊어.’ 주찬네 아부지가 고함치면 뒤따라온 주찬이 누나, 동생들은 수화기를 잡아보지도 못했지. 군대 간 주찬이가 잠깐 병영 밖으로 외출 나와 우리 집으로 전화를 건 거야. 그때는 그랬어.”

“호랑이 담배 필 적 얘기지,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스마트폰을 들고 미국에 있는 제 사촌과 화상통화를 하는 세상이니….”

“불과 몇 십 년 사이에 천지개벽을 한 거야.”

“하도 빨리 변해 따라가려니 눈이 팽팽 돌아.”

“뭐니뭐니 해도 지난 반세기, 가장 빠르게 변한 건 IT일 거야.”

막걸리 잔만 홀짝이며 말 없이 눈만 껌뻑이던 친구가 입을 열었다.

“아니야, 더 빠르게 더 크게 변한 게 있어.”

그의 입에 시선이 쏠리며 침묵이 흘렀다.

“우리 아버지는 기생 하나 데리고 금강산 갔다가 한 달 만에 돌아와서도 대문을 발로 차고 들어오며 닭 한 마리 잡으라고 큰소리쳤어.”

웃음이 가라앉자 “요즘 세상 그랬다간 정신병원에 잡혀 들어갈 거야”.

“우리 어머니 참 고생 많이 했지. 눈이라도 왔다 하면 동네 우물에서 얼음을 깨고 물을 길어 그 무거운 옹기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곡예하듯이 빙판길을 걸어와 가마솥에 물을 데워 놋대야에 담아 처마 밑에 놓아. 우리 아부지가 나가 세수를 하고 나면 어머니는 솥뚜껑 위에 데워 놓은 수건을 얼른 대령했지.”

“자네 집만 그랬는가, 우리 집도 그랬고 모두들 다 그랬지. 아침 식사 후 아버지가 집을 나서려면 어머니는 얼른 아궁이 앞에 놓아두었던 따뜻해진 구두를 들고 왔어.”

“내 생일이 음력 5월이야. 어머니 새벽에 날 낳으시고 보리타작으로 눈코 뜰 새 없을 때 오후에 밖에 나와 갈쿠리(갈퀴)질을 했대”.

항상 양반 가문을 자랑하던 친구는 “나는 어머니하고 할머니한테도 말을 하대했어”.

“농삿집 여자는 눈코 뜰 새 없었지. 꼭두새벽에 일어나 아침 밥상을 차리고 곧이어 새참을 차려서 함지박에 담아 머리에 이고 등에 업은 아기가 보채면 앞으로 돌려 젖을 물리고 한 손에 주전자를 들고 고개 너머 논매기하는 곳에 갖다 놓고 종종걸음으로 집에 와 점심을 차리고 밤이면 꾸벅꾸벅 졸면서 길쌈을 하고….”

“아이고, 요즘 여자들은 살판났지. 부엌에서 꼭지만 틀면 뜨거운 물 콸콸 쏟아지지….”

“여자들의 삶이 편해진 것보다 더 빠르게 변한 건 목소리가 커진 거야. 여자들의 목소리가!”

“변한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거꾸로 됐어. 한평생 땀 흘려 처자식 먹여 살려 놓았더니 이젠 찬밥 신세야. 마누라 한마디에 남편들은 숨을 죽이니, 이놈의 세상!”

마누리 성토장이 되었다가 여권 신장의 부당함에 핏대를 올리다가 친구들은 제 풀에 꺾여 한숨을 토하고 일어났다. 어깨가 축 처져 각자 집으로 향하는 뒷모습이 씁쓸해 보였다.

조주청 / 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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