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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사모곡

김 영 옥


   유난히 겨울이 긴 것처럼 느껴지고 몸을 움츠렸는데 4월은 누구도 막을 수가 없는 모양이다. 곳곳에 형형색색의 꽃들이 만발한 것을 보면서 그동안 까맣게 잊고 지냈던 어머니가 떠오른다. 어머니가 떠나시던 날도 바로 꽃들이 만발한 4월 중순이었으니......


   내가 3살이던 겨울 어머니는 달랑 주소 하나만 들고 경상북도 영천읍으로 아버지를 찾아 나섰다. 아버지는 작은 초가집 하나를 빌려서 20여 명의 사람들을 데리고 성냥을 만들고 계셨는데 훗날 이것이 성냥공장의 시작이 되었다. 초례청에서 처음으로 상면한 어머니의 모습은 아버지의 이상에서 멀찍이 벗어난 예쁘지 않은 모습이었고 이래저래 실망한 아버지는 만주로 떠나버리셨다. 막상 만주로 가서는 성냥 만드는 기술을 배우고 2년여 만에 돌아오셨다. 첫날 밤의 열매로 태어난 나를 보시고는 어머니와 헤어지겠다는 마음을 접으셨고 영천으로 가서 자리 잡는 대로 연락하겠다고 하셨다. 하지만 아버지가 주신 연락은 몇 개월 만에 보내주신 단 한 장의

편지뿐이었다.


   어느 날 외할아버지는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집에 있는 이 애물단지는 버려야 한다”면서 마당으로 재봉틀을 던져 버리셨다. 외할아버지의 무서운 모습을 본 나는 외삼촌의 책상 밑에서 울고 있었고 그때의 나 자신의 모습이 아직도 진하게 내 머릿속에 새겨져 있다. 당시 외가는 말죽거리에서 꽤 풍요롭게 살고 계셨고 이모는 말죽거리 초등학교 선생님, 외삼촌은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계셨다.


   해산하러 친정으로 와서는 남편 없는 시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친정살이하던 어머니는 워낙 솜씨가 좋아서 이웃들의 소문으로 멀리서도 바느질 청탁을 해왔다.

어머니는 늘 바느질을 하고 계셨으며 청상 아닌 청상으로 바느질하는 딸이 보기 싫었던 외할아버지는 술의 힘을 빌려 재봉틀을 던져 버리셨다.


  그즈음 나는 열병을 심하게 앓았는데 할아버지는 핑곗김에 남편 찾아가라고 내쫓다시피 하여 어머니와 나는 아버지를 찾아 영천으로 가게 되었다. 갖은 치료를 다 해도 낫지 않던 열병은 영천에서 씻은 듯이 나았고 그해 겨울 엄마와 나는 잠시 영천에서 살게 되었다.


   강에서 방망이로 얼음을 깨뜨리며 빨래하시던 어머니의 그 모습은 내 머릿속에 깊이 박혀 어머니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모습이 되었다.

엄격한 외할아버지는 어머니에게는 여자가 공부 많이 하면 팔자 사나워진다고 초등학교만 졸업하게 하였는데 외삼촌은 대학을 나왔고, 막내였던 이모는 고등학교를 나온 덕분에 말죽거리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훗날 어머니는 당신이 못 다한 공부의 열정을 자식인 우리를 통해서 마음껏 푸셨다.


   그 첫 번째로 나는 영천 초등학교 4학년 여름 방학 때 서울로 전학 절차를 밟았다. 큰아버지께서 동대문시장에서 과일 도매상을 하고 계셨다. 일단은 큰아버지 댁에 있는 것으로 정하고 아버지와 함께 서울행 기차를 타기 위해 대구로 갔다. 대구역 근처 대구회관에서 처음 본 천정에서 돌고 있는 선풍기, 나비넥타이를 매고 일하는 종업원, 처음 먹어보는 돈가스 등 나에게는 이 모든 것이 새로웠고 아주 다른 세상에 온 기분이었다.


  청계 초등학교에서 대충 절차를 끝낸 다음 아버지는 나에게 창경원으로, 덕수궁으로 서울구경을 시켜주셨지만, 설사병이 난 나는 모든 것이 귀찮았고 엄마만 보고 싶었다. 그렁저렁 일주일이 지나고 아버지가 떠나시는 날, 울고 있는 나를 차마 떼어놓지 못하고 방학 동안 만이라도 엄마와 함께 있으라며 도로 영천으로 데려가셨고 이 일로 말미암아 전학은 불발탄이 되고 말았다.


    두 번째는 대구로 중학교 진학이었다. 이 일로 엄마의 품속을 영원히 떠나게 될 줄이야.


   세 번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6학년인 여동생과 4학년인 남동생, 일하는 아줌마를 보내 넷이 살면서 가장 아닌 가장을 맡게 되었다. 매일 아침 동생들 도시락과 찬거리 걱정 등등, 지금 되돌아보면 두 번 다시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어찌 살았는지 참 잘 견뎌냈다는 생각이 든다. 철철이 있는 학부형 면담은 으레 부모님 대신 내가 했고, 대구에서의 낯선 삶은 또래 친구들과

어울려 보지도 못한 채 보냈으니 대구에서 보낸 6년은 즐거운 추억거리가 하나도 없다.


  중학교 진학시험을 보고 온 여동생이 입학시험에 떨어졌을 것이라며 며칠을 울고 있어서 동생을 위해 2차 지원을 서울로 가기로 결정을 했다. 발표 이틀 전에 지원했던 학교로 찾아가서 교감 선생님께 정중히 인사를 드리고 2차 지원 계획을 말씀드리며 “시간이 급해서 그러니 합격

여부를 미리 알아볼 방법은 없을까요?”하고 조심스럽게 여쭈었다. 잠시 망설이시다가 어딘가 다녀오신 후 “2차원서 내지 않아도 되니 울지 말고 잘 지내라”는 말씀에 인사를 어떻게 드렸는지도 모르게 한 걸음에 집으로 돌아와 동생에게 기쁜 소식을 안겨 주었다.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일하는 아주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찬거리 사러 갔으려니 생각하고 기다렸는데 돌아오지 않아 저녁 준비라도 하려고 쌀독을 열어보니 비어있었다. 혹시나 해서 책상서랍을 열었더니 넣어 두었던 생활비가 몽땅 없어져 버렸다. 그제야 아주머니가 떠난 것을 알아차렸고 연락을 받으신 어머니는 그 밤에 밥을 지어 마지막 버스로 달려오셨다. 울면서 투정부리는 내게 “미안하다, 미안하다.”라는 말씀만 연거푸 하시면서 “내 욕심에 너희들 고생만 시키는구나.” 하시니 투정부리던 나는 어머니에게 미안한 마음 때문에 더는 투정을 부리지 못하

였다.


  그 후 나는 서울 이화여대에, 동생은 이화여고로 진학하였고, 남동생은 동성중학교를 나와서 경기고로 진학하게 되었다. 마지막 엄마의 열정은 늦둥이로 난 막내 남동생마저 내게로 보내서 부모님만 영천에 계시고 우리 4남매 모두는 정릉에서 함께 살게 되었다.


  너무 일찍 엄마 품을 떠난 탓일까? 동생들을 맡은 의무감 때문일까?

  덕분에 나는 일찍 철이 들게 되었고 엄마는 모든 결정을 나에게 맡긴 채 안타까운 마음을 늘 편지로 적어 내게 보내 주시며 마음을 달래시었다. 모아 두었던 모든 편지는 결혼하고 미국으로 오면서 친정에 두고 왔다. 늘 죽음을 준비하면서 사셨던 어머니는 내 유치원 졸업장부터 초등

학교 성적표와 상장들, 내가 춤출 때 입었던 옷가지와 소품들, 하물며 어릴 때 먹던 부러진 은수저까지 꼼꼼히 따로 챙겨두셨다.


  이따금 어머니가 그리울 때면 어머니의 편지를 꺼내 보곤 하는데 “보고 싶은 내 딸 영옥아”로 시작하여 사람이 살아가는 덕목(중략) “여자는 항상 내 감정에 휘말리지 말고 잘 참아야 하며 참는 침묵이 천만 마디를 대신하니 ‘참을 인’자를 네 몸에 꼭 붙이고 살아라.” 등등 엄마는 편지마

다 작은 덕목들을 늘 일러 주셨고 그런 엄마를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나와 동생들은 더 조심하면서 살았다.


  엄마의 마지막 편지는 막내 동생 결혼식 날을 알리면서 “큰일을 시작하고 보니 너희들 생각이 나는구나. 영주 혼인 때는 현석이 아버지(남편)가 와서 크게 도와주었는데 많지 않은 식구가 한자리에 모이지 못하니 참 섭섭하다. 젊었을 때는 모든 일이 열심히 노력하면 내 뜻대로 되

는 줄 알고 허둥거리고 살았는데 이제 돌이켜 보면 내 뜻대로 산 것이 아니라 모두가 주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 편지를 받고 며칠 후 어머니는 성당 기도 모임에서 보고서를 읽던 중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그 와중에도 아버지 놀라신다고 연세 의대 병원에서 레지던트를 하고 있는 막내아들에게 연락해 달라는 것이 마지막 말이 되었고 영영 깨어나지 못하고 우리 곁을 떠나시게 되었다.

엄마가 쓰러지신 후 사흘이 지났는데 아무런 차도가 없다는 연락을 받고 서울로 갔지만 말 한마디 나눌 수 없는 상태였다. 숨 쉬는 것마저도 기계에 의존하고 있는 엄마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이주 후 결혼식 예정이었던 동생은 물론 온 가족은 어머니의 뜻하지 않은 돌발 사태 때문에 참으로 막막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이면 벌써 어머니의 삶은 끝이 났어야 마땅한데 계속 연명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없다는 담당 의사 선생님 말씀에 나는 엄마의 숨은 뜻을 알 것 같았다.


  급히 사돈댁과 아버지를 설득하여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동생의 결혼식을 올리었고 사흘 후 인공호흡기를 떼면서 어머니를 하늘나라로 보내 드렸다. 어머니를 보낸 4월은 나에게는 너무나 잔인한 달이었는데 어느새 30년이 훌쩍 지났고 나는 어머니에 비하여 이미 5년은

덤으로 살았으니 이제 어머니를 만날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엄마, 정말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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