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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 친구야 !

<고등학교 동기들, 팔순 잔치에 다녀와서>

이 덕 희


  3년 만에 고국 방문은 무척이나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그동안 소식이 뜸했던 친구들도 만나고 오랜 세월 뵙지 못한 몇 분 남지 않은 은사님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마음이 한껏 부풀었다. 비행장에 마중 나온 여동생 부부의 차를 타고 담소를 하며 공항을 빠져나와 서울로 달렸다. 길가 가로수엔 아직도 남아 있는 벚꽃 잎들이 팔랑이고 있어 봄의 훈기를 느낄 수가 있었다.

  “아! 이제야 고향에 왔구나.”

  그날 밤 잠을 설치고 아침 일찍 일어나 과천에 있는 어린이 대공원으로 갔다. 꽃샘바람에 살랑거리는 진달래, 개나리, 벚꽃, 하얀 싸리꽃을 보기 위해서였다. 꽃들은 연초록과 진한 초록으로 물들어져 있고 파란 하늘과 어울려 한 폭의 수채화 같았다. 그야말로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아름다운 대자연의 합창이 아니던가!


  며칠 후 드디어 기다리던 동창회의 날이 왔다. 어린 시절 소풍 가는 전날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흥분되었다. 일찍 일어나 머리도 감고 나름대로 얼굴을 곱게 단장했다. 그리고 내 얼굴을 거울에 비춰보았다. 60여 년 전 상큼했던 내가 아닌, 얼굴엔 연륜을 말해주듯 나이테가 자리 잡고 있다. 그 나이테가 내가 살아온 이야기이다.


  아침 출근 시간을 피해 10시쯤에 집을 나섰다. 차보다 전철이 더 편하다는 말에 전철을 탔다. 약속 시간에는 택시보다 전철이 매우 유리하다. 이제 서울은 구름다리를 놓아 차들이 비행하듯 이중 삼중으로 이동하지 않는 한 너무나 복잡한 추세임을 이번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편리하고, 깨끗하고, 그렇게 붐비지 않아 참 좋았다. 어느 나라에 비길수 없이 정리가 잘 되어 있으며, 계단으로 수백 명이 줄을 서서 오르내리는 모습은 참으로 싱그러웠다. 항상 노인들만 보고 살아온 우리 동네와는 사뭇 달랐다.


  서울에서 가장 복잡한 소공동 롯데 호텔에 들어서니 입구에 “경북여고 27회 동기 팔순 잔치”라 써 놓은 대형현판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엊그제 같았는데 단발머리를 하고 올망졸망 교정을 뛰놀던 꼬마 아가씨들이 늙은 할머니가 되어 만나다니! Ball Room에 들어서는 순간

이미 와서 기다리던 친구들이

  “야아! 반갑다! 니 덕희 아이가?”

  감격의 포옹을 한다. 저편에서도 친구들이 몰려와

  “친구야, 친구야! 니 미국 멀리서 왔구나, 너무 오랜만이다. 야아! 니 우리 반 1학년 松班 반장했던 조덕희 맞제? 니는 늙지도 안하고 아직 가시나 같노?” 하며 부둥켜안는다.


  옛날 단발머리 여학교시절 한 반이었다는 친구들이 이리도 정겨울 수가 있는가. 타임머신을 타고 60년을 넘는 세월로 거슬러 올라가 그때의 우정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눈앞에 있는 친구들의 머리엔 하얀 서리로 뒤덮여 있고, 어떤 친구는 지팡이에 의지해 걸어 나에게로 다가왔다.

  “ 아! 속절없이 흘러간 세월 앞엔 아무도 장사가 없구나!”


  영남의 명문(名門)으로 꼽히는 경북여고는 眞. 善. 美의 전당으로 수많은 여걸과 현모양처들을 배출했다. 조국 근대화를 이끌어 온 많은 남정네들의 아낙으로 보필하며 열심히 살아온 증인들이다.


  동창회가 시작되었다. 110명이 모였다. 나의 Piano 반주에 맞춰 교가를 합창하고 백세건강을 기원하는 박수를 치는 동안 이미 우리 곁을 떠난 정다운 친구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아! 세월은 너무 빨라 순서도 없이 이제 다 놓고 떠나야 하는가!”

  돈이 많고 작고가 아니고, 명예가 높고 낮음이 아니라 건강이 얼마나 유지해 주느냐가 중요하다. 옛날 할머니들이 들려준 말들이 생각난다.

  “여자는 남편을 잘 만나야 하는 기라. 부모 복은 개복이라니까.”


  정말 그럴까? 그러나 그중에는 예외도 있지 않은가. 오래전 많은 친구들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친구 A양은 그 자신도 특등 생으로 공부도 잘했고, 예쁘고, 가정도 좋았고, 게다가 훌륭한 남편 만나 국내 굴지의 기업대표 사모님으로 우리 동기 중에서는 모든 것을 갖춘 최고의 화려한 존재였다. 그런데 이번에 만나보니 얼굴엔 근심의 주름살이 꽉 찼고 머리는 하얀 서리가 내려있다. 그렇게 곱던 목소리까지 변해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잠겨 있는 듯했다. 사업관계로 부자간에 소송이 걸려 있으며 사업을 물려받은 딸은 가정 파탄으로 집안이 풍비박산이 되었다고 한다.


  짧은 세월 사악한 시대의 비극을 눈앞에 보는 듯 참으로 마음이 아팠다. 여자의 일생이 이토록 변화무쌍하며 주어진 관계에 의해 끝이 정해지는가! 라는 생각을 하며 맛있는 오찬을 Full Course로 끝내고 10여 년 전 동창회 때 찍은 동영상을 보면서 웃고, 박수치고, 깔깔대니 잔치 분위기는 익어갔다. 늙은이가 아니라 단발머리의 60여 년 전 우리로 다시 돌아간 것이다. 여기저기 Table에서 행복의 웃음보가 터져 나왔고, 마침내는 모두 일어나 줄을 서서 어깨동무를 하고 ‘친구여’와 ‘응원가’를 부르며 언제 또다시 만날까 기약 없는 재회를 다짐하면서 눈물을 지었다.

  “먼 산 아지랑이 품 안에 잠자고 산 곡간에 흐르는 물 또 다시 흐르네.

  古木에도 잎이 피고 벌 나비도 벗을 찾는데 가신님은 봄이 온 줄 모르시나요!”

  노래 소리를 뒤로하며 우리들은 서로서로 진한 포옹을 했다.

  언제 또다시 볼 수 있을까?


  동창(同窓)이란 같은 창문 아래에서 공부를 했다는 뜻이다. 옛날 그때 우리들 소녀의 가슴엔 저마다 큰 꿈을 꾸며 살아왔건만 60년이 훨씬 지난 지금 우리들은 각자의 삶의 보따리를 내려놓고 이 세상을 떠나야 할 채비를 해야 한다니 참으로 옛날이 다시 그리워지며 사랑하는 친구들과 아쉬운 이별을 해야 했다.


  내 마음의 고향인 친구 숙희는 국민학교 때의 동창이고 70년을 살아오면서 가장 가까운 친구이다. 우리는 한결같이 소식을 전하며 살아온 터라 전에도 그랬듯이 동창회가 끝나면 강원도 봉평에 있는 숙희네 집 별장에서 친구들과 며칠을 보내기로 계획을 세웠다.


  갑자기 남편이 담석증으로 응급실에 입원 세 번의 수술을 받고 패혈증까지 겹쳐 80대 중반의 나이에 정말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가 무사히 퇴원하는 일이 있었다. 아들 부부에게 간호를 맡기고 숙희는 이별의 아쉬움에 하룻밤이라도 같이 지내자고 우기며 우리 일행 5명을 데리고 봉평 별장으로 갔다. 가는 길에 이효석의 작품 ‘메밀꽃 필 무렵’ 고장인 메밀밭도 보고 ‘허브 마을’에 들려 온갖 꽃들의 향연을 맘껏 즐기고 그 향에 취했다.

  저녁에는 투박한 사발 잔으로 막걸리를 가득 담고 “찡”하게 울리며 우리들의 건강을 위해 자축과 우정을 다짐했다.

  “진정 살아 있음은 무한한 축복이라고!”

  얼굴이 불그스레해진 친구들이 나에게 또 한 번 찬사를 퍼붓는다.

  “친구야! 친구야! 너는 참 귀한 존재 데이!! 그 나이에 해외에서도 우리 경북여고를 최고로 빛내주는 동창으로 표창을 받아야겠다. 야아! 너무나 장한 일을 해냈구나. 우리는 생각도 못한 탈북민 성원금을 모으려고 큰 음악회를 지휘하고 또 그들에게 성금을 모금해 보냈다니 너무 자

랑스럽구나!”

  숙희는 내가 탈북민을 위한 음악회 때 미국에 있는 아들을 시켜 후원금을 보냈다. 그래서 내가 DVD Tape를 보냈고 그 사실을 친구들에게 이야기한 것 같다.

  “야아! 덕희, 니가 여기 있으면 우리 모두 노래 부르고 즐겁게 살 텐데. 너무 아쉽다. 제발 너는 병들지 말고 오~래 건강하게 살면서 좋은 일 많이 해라.”

  나는 어딜 가나 노래의 삶에 전령사일까!


  다음 날 미국행 비행기를 타러 인천공항으로 가는 중에 숙희로부터 전화가 왔다.

  “덕희야! 우리 기사에게 무말랭이 한 옹큼 만들어 보낸다. 어제 네가 너무 맛있게 먹는 것 보고. 내 생각하며 먹으레이, 사랑한다, 덕희야!”

  눈물이 핑 돈다.

  이곳에 와서 무말랭이를 하나씩 씹을 때마다 숙희의 끈끈한 정과 손맛을 느낀다.

  “아! 나는 사랑받고 사는 참으로 행복하고 복된 사람이로구나.”

  “숙희야, 사랑한다. 언제 또 만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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