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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간 친구를 그리며

이 시 효


  이른 새벽녘에 전화벨이 울렸다. 한국에서 온 것이었다.

  “아저씨, 아버지가 조금 전에…….”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이기 시작했다. 친구의 딸이었다.

  “그래, 가셨구나 …… 전화 주어 고맙다.” 곧 다시 통화하마고 약속하고 전화를 끊었다. 며칠 전에 있었던 짧은 통화에서 그 친구의 심한 호흡곤란을 느꼈고, 말기 폐암에서 어려운 종말을 맞고 있음을 알고 있었기에 나는 상황을 짐작했었다. 새벽잠에서 막 깨어난 터라 아직 정신이 혼미했다.


  잠자리에서 빠져나와 거실 창가로 갔다. 짙은 새벽안개로 바깥쪽은 아직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고, 회색배경인 창 너머엔 그 친구의 핏기 없는 얼굴이 어렸다. “인젠, 너희들 다 가고 나  혼자 남았구나……” 중얼대는 나의 윗입술은 눈물로 적셔가고 있었다.


  나에겐 세 사람의 각별한 친구가 있었다. 대학 시절에 만나 그렇게 붙어 다녔던 친구들이었다. 우리들 네 사람 사이에 물을 부어도 새지 않을 거라고 주위에서 질시하며 빈정대기도 했다. 우리들 사이엔 네 것, 내 것이 없었다. 정말 희로애락을 같이했다. 우리들은 서로가 이름 대신 별호를 만들어 불렀다.


  한 친구의 별호는 ‘훈장’이었다. 그 친구는 소도시에서 자랐고 넉넉지 못한 집안 사정 때문에 고등학교 시절부터 가정교사로 학업을 유지해 왔다. 그는 어릴 때부터 수재로 알려졌다고 했다. 대학 입학 때 전교 수석이었고 졸업 때도 물론 전교 수석이었다. 대학 과정을 거치는 동안 늘 일등이었고 이등은 항상 그로부터 먼 거리에 있었다. 그러나 그 친구의 놀이 실력은 예외 없이 낙제에 가까웠다. 더욱이 육체적 운동에는 아주 둔치였다. 한마디로 꽁생원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훈장’이라고 불렀다.


  또 하나의 친구 별호는 ‘면장’이었다. 그는 면 소재지에서 자랐고 시골 부잣집 아들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면장직을 오래 역임했기에 그 별호가 그 친구에게로 갔다. 그는 독실한 가톨릭 교인이었고 우리들 사이에선 화평의 천사 역할을 했고 얼굴에서 웃음을 지워본 적이 없었다. 가끔 우리들 주변에 정돈되지 못한 뒷치레는 항상 그의 몫이었다. ‘면장’이라 불린 그는, 곁에 있어 주위를 풍성하게 해주는 좋은 친구였다 .


  다른 하나의 친구의 별호는 ‘악한’이었다. 조금은 익살스러운 의미가 곁들인 ‘악한 사나이’라는 말이었다. 그는 괜찮은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성년이 되기 전에 양친을 여의고 그의 외삼촌댁에서 더부살이를 하며 학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 친구는 잘생긴 외모에 더하여 활달한 성격을 가져 동료들 간에 인기가 대단했다. 그는 운동을 종류대로 선수를 버금가게 해냈고 말은 청산유수여서 가끔 남의 시비에 끼어들어 곤란을 겪기도 했다.

특히 그는 익살스럽게 남을 골려주는 성격을 가졌고 그의 이름이 ‘선한’인 터라 ‘선할 선’ 대신 ‘악할 악’으로 고쳐 불러 ‘악한’이라는 별호가 주어졌다.


  나의 별호는 처음엔 ‘예수쟁이’라 했으나 곧 ‘예수꾼’으로 바꿔 불렸다. 그때 나는 개신교 교인이었고 일요일 오전 모임에는 거의 참여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스러움으로 나를 그렇게 불렀다. 사실은 나도 그 별호가 싫지 않았던 것은, 내가 먼저 좋은 예수꾼이 되어 그들도 언젠가는 예수꾼이 되어 주기를 바랐었기 때문이었다.


  졸업 후, 곧 우리들은 병역의무를 필했고 그 후 각기 전공과목을 택하여 그 교육을 위해 다른 방향으로 헤어졌다. 시간이 흘러 우리는 각각 다른 분야의 전문의가 되었다.

  ‘훈장’은 신경외과, ‘면장’은 피부과, ‘악한이’는 산부인과 그리고 ‘예수꾼’인 나는 소아과였다. 우리들은 주어진 터전에서 열심히 일했고 모두 나름대로 성공적인 삶을 꾸려나가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서로의 사이에 공간은 격해 있었지만 자주 소식을 주고받았고 우리들의 우정과 의리는 모두 결혼하고 가정을 이룬 후에도 계속되었다.


  그 뒤 많은 시간이 흐르는 사이에 우리들은 숱한 이야기들을 남겼다.

  그러던 한때 우리들 중 한 친구가 예기치 않게 삶을 접어야 했다.

  우리 모두의 두뇌가 되었던 “훈장”이 오십을 넘기지 못하고 요절했다. B형 간염으로 인한 간암으로 속절없이 생을 마감해야 했다. 미인단명이라 했던가, 수재 단명이었다.

  주위에 숱한 아쉬움을 남기고 그렇게 떠나 버렸다. 떨어져 나간 ‘훈장’의 부분을 그리움과 추억으로 채워가며 우리들의 만남은 계속했었다.

  그러다가 또 다른 사분의 일이 떨어져 나갔다.

  화평의 천사였던 ‘면장’이 오년 전 뇌졸중으로 몇 개월 동안 침상에서 반 식물인간처럼 지나다가 생을 마감했다. 이 세상에 더 오래 있어도 분명 주위에 덕을 끼칠 사람인데 하나님은 왜 데려가셨을까? 남은 가족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온다.


  그래서 둘은 가고 ‘악한’이와 ‘예수꾼’만 남았었다. 그런데 ‘악한’이도 일차형 당뇨병의 합병증 때문에 건강상태가 날로 악화 되어갔고 거기에다 얼마 전에는 중증 폐암으로 진단을 받고 있는 터였다.


  지난 몇 해 동안에 한국을 자주 들렸었다. 여러 가지 목적이 있었으나 가장 큰 이유 그 마지막 남은 친구를 만나 며칠 간 먼저 간 친구들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그리움에 젖어보는 것이었다. 이젠 만나면 하찮은 일에도 맞장구치며 좋아했던 ‘악한’이도 떠나버렸다. 그래서 모두 다 가버리고 나 혼자만 남아있다. 지난 며칠간 나는 거친 들에 홀로 서 있는 것처럼 고독감에 시달리고 있다. 이 그리움을 언제쯤 털어버릴 수 있을까?


  며칠 전에 떠난 ‘악한’이와 마지막으로 했던 몇 마디의 말이 지금도 생각 속에 맴돈다.

  “너 가서 훈장과 면장을 만나면 내가 무척 보고파 하더라고 전하고, 너희들끼리만 좋아하지 말고, 좀 기다렸다가 내가 가면 나와 함께 하자. 나도 머지않아 갈 터이니.”

  “오냐 오냐, 천천히 오거라. 서둘 것 없어……”

  몇 번이나 가쁜 숨을 들이키며 익살스러우려고 애쓰는 모습이 나를 더욱 아프게 했다.

  고맙고 다행이었던 것은 그들이 삶을 마감하기 전에 모두 ‘예수꾼’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두 친구는 가톨릭 교인으로 영세를 받았고 다른 한 친구는 개신교회의 세례교인이 되었다.


  오랜 나의 염원이 이루어진 셈이다.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자주 부르던 노래 ‘친구여’의 노랫말이 떠오른다.

  “슬픔도 기쁨도 외로움도 함께했지 부푼 꿈을 안고 내일을 다짐하던

  우리 굳센 약속 어디에 꿈은 하늘에서 잠자고 추억은 구름 따라 흐르고

  친구여 모습은 어딜 갔나 그리운 친구여”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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