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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단편소설 황소의 길

2020.03.12 11:24

김일홍 Views:192

단편소설 황소의 길


김 일 홍


 


신문사에 전화가 걸려 왔다.


“ 대성동(臺姓洞) 김 이장(里長) 인데요.” 수화기 틈새로 말소리가 새어나왔다.


전화를 받은 미스 김이 누군가를 찾느라 두리번거리다.


“ 김 기자님 전화 받으세요. 대성동(臺姓洞) 김 이장(里長) 입니다.”


대성동(臺姓洞) 김 이장(里長)은 신문사에서 잘 알려진 인물이다. 김 이장(里長)이 오랜만에 신문사에 전화를 걸었다. 웬일인가 하고 전화를 받았더니 내일 대성동 초등학교 졸업식이니 좀 와 달라는 말이다. 신문에 기사를 좀 내 달리는 뜻도 있지만, 김 이장(里長)의 의도는 그 것만은 아니다. 막걸리가 잘 익었으니 오랜 만에 김 기자님이 오셔서 막걸리 한 사발 먹자는 것이다. 김 이장(里長)의 막걸리는 화학재료를 쓰지 않고 좋은 쌀과 누룩을 빚어 만든 명품이다.


이런 인연으로 나는 김 이장(里長)하고는 별다르게 가깝게 지내는 사이다.


대성동(臺姓洞)하면 아는 사람이 별반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느 날, 판문점 군사정전회담을 취재 하고 나서 돌아오는 길에 선배기자가 들릴 곳이 있다고 하면서 나를 데리고 간 곳이 대성동 (臺姓洞) 마을이다. 년 초 신문사 인사 이동시 선배가 문화부장으로 자리를 옮기는 과정에 그의 판문점 출입처를 나에게 넘겨주었는데 가끔 특종이 나오는 곳이라면서 대성동(臺姓洞) 김 이장(里長)을 나에게 인계한 것이다. 김 이장(里長)을 소개받는 그날도 잘 익은 막걸리 한 사발을 먹었다. 그때 느낀 김 이장(里長)의 인상은 텁텁하고, 털털했다.


시간이 흘러 내가 김 이장(里長)하고 독자적으로 인연을 맺은 것은 대성동(臺姓洞)의 주민이 근처 야산에서 도토리를 줍다가 북한군으로부터 납치되어 북쪽으로 잡혀간 사건이 있어 취재차 갔다가 김 이장(里長)이 막걸리를 꼭 먹고 가셔야 한다고 핵서 먹다가 그만 주저앉아 하루를 묵게 된 사연으로 인연이 깊어졌다.



대성동(臺姓洞)은 휴전선 D.M.Z 내에 있는 촌락이다. 반세기 동안 외부인의 출입이 차단되었고 고립된 생활을 하는 마을이다. 6.25 전쟁 전에는 200여명이 모여 살던 마을 이라고 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이 맺어질 무렵 전쟁 중에 미처 피난을 가지 못한 주민들을 다른 곳으로 이주 시키지 않고 그대로 정착해 살도록 휴전협정 시 양측 대표가 합의를 본 것이다. 그렇게 해서 D.M.Z. 내에 남쪽과 북쪽에 마을을 하나씩 두기로 했는데 남쪽이 자유의 마을인대성동이고 북쪽은 평화의 마을인 기정동이다. 자유와 평화가 잘 어울리는 마을이다.


전쟁 전에는 아랫마을과 윗마을로 불렀다. 윗마을에는 형님이 살았고, 아랫마을에는 동생이 살았는데 집안의 대사(大事)가 있으면 윗 골 형님 댁에 모여 잔치를 버렸다. 파하면 술이 과한 동생은 황소가 끄는 마차에 비스듬이 누워 아랫마을에 돌아오곤 했다고 한다. 황소는 길을 알려 주지도 안았는데 형님 댁과 동생 집을 곧잘 오고가고 했다. 두 마을의 거리는 800m, 두 눈으로 빤히 쳐다보이는 거리이다. 그 사이로 사천(砂川) 내가 흐르고 있어 동리 사람들이 다리를 놓아 남북을 건너다니곤 했다.


전쟁 후에 그 다리를 ‘돌아오지 않는 다리’ 라고 명명했는데, 그 다리를 한번 지나가면 영원히

돌아 올수 없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이제는 오갈 수 없는 지역, 그 옛날 형제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알 길이 없다.


대성동(臺姓洞) 마을은 좀 묘한 곳이다. 대한민국 땅 안에 있으면서 정전협정 제10항에 의해 UN군 사령부에서 관할하고 있다. 말하자면 UN군 사령부의 통제를 받는 곳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4대 의무 중 납세의 의무와 국방의 의무가 면제 되어있다.


저녁 7시부터는 민정 중대가 가구별 인원을 점검하고 자정부터 새벽 5시 까지 통행이 금지된다. 말하자면 대성동 마을은 군영지대나 다름이 없다.


대성동과 기정동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양 마을엔 각기 국기를 게양하는 탑을 세웠는데 대성동 마을의 태극기 게양대 높이가 99.8 m 꽤나 높다. 그런데 북쪽 기장동의 인공기 게양대 높이는 80 m 정도였는데 남측의 태국기 게양대가 자기들 보다 높은 것을 보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165 m의 게양철탑을 만들어 인공기를 게양하고 있다. 어느 하나 지지 않으려는 북쪽의 심통을 알 수 있다.



나는 좀 늦어 김 이장(里長) 과 약속한 졸업식에 참석했다. 비무장 지대의 유일한 초등학교 초미니 졸업식이다. 대성동 초등학교의 전교 학생 수는 20여명 이중에 금년 졸업생은 4명이다. 그래도 졸업식은 매년 성대하게 치러진다. 좁은 강당에 많은 귀빈들이 참석했다. UN군 사령부 군사정전위원들, 중립국 감독위원회요원들 그리고 육군 1 사단 군관계자들과 파주시장을 비롯 피주시 교육청 직원들, 대성동 주민들과 학부모와 재학생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시골학교 졸업식에 드물게 보는 관객들이다. 초미니 졸업식에 장대 같은 미군들이 꽉 들어 차 졸업식장 비좁아 보였다


전교생 20여명에서 4명이 빠진 16여명이 무대에 올라가 4명의 졸업생을 위해 대북 난타로 흥을 돋우었다. 행사는 격식대로 진행되었다. 교가제창과 교장의 훈시 각계 관계 인사들이 한 마디 씩 했다. 졸업생중에 한 여자아이가 대성동에서 태어나 대성동 초등학교를 졸업하게 되니 감회가 새롭다며 중학생이 되어서도 대성동 초등학교를 빛내겠다고 또랑또랑 다짐한다.


UN 군 사령부 위원이 영어로 축사를 했다. 졸업생 4명을 앞에 놓고 미군들이 선물을 주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간단한 파티를 마치고 졸업식은 끝을 맺었다.


김 이장(里長) 이 자기 집에 가자고 나의 소매를 끌어 당겼다. 잘 익은 막걸리를 마시고 가야 하지 않느냐고 해서 이장 집으로 갔다. 이미 상은 차려 놓고 있었다. 잘 익은 막걸리 한 동아리가 상 옆에 놓여있고 녹두 지지미가 술맛을 당겨 주었다. 몇 사발이 오가는데 문이 열리며 낯익은 홍 할머니가 도토리묵을 김 기자님에게 드린다고 가지고 왔다. 도토리묵을 놓고 간다는 홍 할머니를 나는 한사코 방으로 끌어 드렸다. 나와는 감회가 깊은 홍 할머니이다. 같이 따라 들어오는 손녀 딸을 보았다. 오늘 4명의 졸업생중 한 학생이다. 또랑또랑 답사를 한 학생이다.


“ 아니, 아직도 도토리묵을 만들어요? 그렇게 혼나고.”


나는 한 마디 했다. 오래전 도토리를 줍다가 북한군에 붙들려가서 곤욕을 치렀는데도 도토리묵은 못 버리는 것 같았다.


“ 이 꼬맹이 우리 손녀 딸입니다.”


오늘 졸업생 할머니의 손녀 딸이다. 홍 할머니가 자랑스럽게 소개를 한다.


오래 전일이다.


어머니 홍 씨와 아들 김 씨가 옆집 주민들과 농사일을 하다 도토리를 줍기 위해 인근 야산으로 들어갔다. 어쩌다 휴전선을 넘었는지 모르게 도토리를 연신 줍다 근처 북한군에 의해 끌려갔다. 사건 발생 후 UN군사정전위원회는 회담을 열어 송환을 요구 했으나 북측이 고집을 피우며 자진 월북이라고 주장을 했다. 송환문제가 시원하게 풀리지 않자 신문사에서 이 내용을 특집으로 보도를 했는데 그때 내가 직접 대성동(臺姓洞)으로 와서 취재를 한 일이 있다. 그 후 북쪽에서 돌려보내겠다는 전갈이 왔고 여러 달 만에 송환이 된 사건이다. 그때 그 아들이 결혼을 해서 낳은 딸이 오늘 졸업을 했다. 그 때 북에서 돌아오지 못했더라면 이 아이가 태어났을까. 감회가 깊었다.


“ 홍 할머니, 도토리묵이 맛있네요. 이 도토리는 어디서 구했어요?”


나는 웃으며 농으로 홍 할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 요 근처요.“


“ 그런데 그때는 왜 선(線) 을 넘었어요?”


나는 근처에도 도토리가 있는데 왜 북쪽으로 넘어 갔느냐는 뜻으로 말을 했다.


“ 옛날엔 마음대로 다녔지 선(線)이 어디 있노. 지들이 선(線)을 긋고 지랄이지 왜 나한테 그러노. 내가 꼬맹일 때는 나는 여기저기 다 돌아 다녔어.”


홍 할머니는 북한군에 잡혀가서도 막무가네로 선(線)을 무시했다고 한다. 아직도 홍 할머니는 선(線)의 개념이 없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선(線)이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홍 할머니다.


“ 그래도 내 새끼를 얻었으니.”


하면서 손녀 딸의 얼굴을 쓰다 담는다. 그 날도 우리는 막걸리 한 동을 비웠다.


D.M.Z. 침묵의 땅. 민족의 비극이 담겨있는 곳. 지금은 동물들의 고향이다. 철새들이 날아와 노닐고 있고 사라져간 희귀한 동물들이 개체수를 늘이고 있다. 요새는 관광이랍시고 민통선 안의 먹 거리 관광을 하고 비무장 지대 안의 대성동에도 들어간다. 그래도 항상 긴장을 해야 하는 지역이다.


 파란 하늘 안에 구름 한 점 없다. 저만치 하늘엔 솔개 한 마리가 날개를 편 채 움직임이 없다. 먹이 감이 눈에 들어 온 모양이다.


“ 삐이이 요로로 ....”


솔개의 울음소리는 비무장지대의 철책 선에 와 닿아 쇳소리 울림으로 변해 퍼진다. 한반도를 갈라놓은 철책 선은 앙상하게 뼈대만 남은 공룡의 형상처럼 비스듬이 누어있다. 억새풀이 철책을 휘감아 철책사이로 비집고 돋아난 갈대풀이 살진 공룡으로 변신시키고 있다.


바람결에 흐느적 거리는 갈대의 결이 마치 꿈틀거리며 앞으로 기어가는 공룡의 움직임 같이 보인다.


고목에 걸린 석양이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솔개가 까치집을 덮쳤는지 보이지 않는다.


갑자기 바람이 일기 시작한다. 흑운(黑雲)이 하늘에 차기 시작한다.

비를 실은 퀘퀘한 바람이 서서히 임진강 하단에서 불어오고 있다. 염기가 꽤나 실린 바람이다. 임진강을 타고 올라온 눅한 바람이 골 따라 번져 철책에 잦아든다.


하늘이 울컥 한바탕 쏟아질 것 같다.

밤이 오기 시작한다. 밤의 역사가 이제부터 D.M.Z.에서 시작 되고 있다.

주위의 사물을 때리는 빗소리가 제법 크게 들린다.

멀리 철책 선을 가운데 두고 불빛이 교차되어 명멸하고 있다. 어느 쪽 군사 도로인지 강한 직선의 헤드라이트가 칠흑 같은 밤하늘을 갈라 치고 있다.


밤이 얼마나 깊었을까.


 “ 탕...탕...탕... ”


 남 북 어느 쪽이 먼저 먼저랄 것 없이 동시에 총소리가 울렸다.

고요함이 신경질적인 쇳소리로 비무장지대를 진동시킨다. 양측에서 계속 탄 선이 교차되고 있다.


다음 날, 비서장회의가 판문점에서 열렸다.

어제 밤에 일어난 총격 사건에 대한 규명을 하기 위해서였다.

회의가 열리기 시작하자 북한 측이 먼저 일방적으로 항의를 한다.


“ 어제 총격 사건은 당신들이 공작원을 침투시키기 위한 수작이요.”


머리를 치깍은 북한 요원이 목에 힘을 주며 소리를 질렀다.


“ 우리가 공작원을 침투시켰다고? 웃기지 말아요. 당신들 짓이요.”


유엔군 측 대표가 가소롭다는 듯 미소를 지우며 처다 본다.


“증거를 대시오.”증거를 대시오.“


양측은 소리만 지를 뿐 대화가 없다.


“그러면 우리 함께 현장에 가서 확인 합시다.”


군사정전 비서장들의 합의에 따라 총격전이 벌어졌던 비무장지대 철책 앞으로 쌍방 조사단이 합류했다. 철책을 가운데 두고 양측 군관들은 오랜 친구처럼 악수를 했다.


“ 안녕들 하시오.”


“ 동무들 수고 많소.”


낯 설은 얼굴들이 아니다. 수시로 서로 철책 선을 지나치며 인사를 나눌 정도의 안면이 있는 군인들이다.


“ 아침에 이팝에 고기국은 먹었소?”


남측 장교가 농을 걸었다.


“ 여기가 당신들이 공작원을 침투시킨 장소요.”


북측 군관이 한 장소를 가르켰다. 철책 망을 두고 남 북 쪽이 별 이상이 없었다. 어제 내린 비로 철책 한 부분이 함몰되어 구멍이 났다. .


“ 당신네 주장이라면 우리 쪽에 어떤 흔적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런 흔적이 없질 않소?”


남측 장교가 항의를 한다.


“ 당신네 쪽이 이상이 있는 것 같소?”


남쪽 장교가 북방 한계선 넘어 한 지점을 가르켰다. 철책 따라 잡풀이 서쪽 임진강 쪽으로 엉켜 쓰러져 있었다. 양측 장교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잡풀이 쓸려나간 곳으로 시선이 집중되었다.


출근시간에 맞추어 신문사에 전화가 왔다.


“ 대성동(臺姓洞)의 김 이장(里長) 인데요.”늘 그렇듯이 김 이장은 꼭 같은 말로 전화를 한다. 수화기를 받은 미스 김이 두리번거리다가


“ 김 기자님 전화요.”


“ 누군데?”


“ 받으면 알아요.”


전화를 받아 들었다.


“ 김 기자입니다.”


“ 김 기자님 빨리 대성동으로 오세요.” 텁텁한 김 이장이 다급하게 말을 한다.


“ 무슨 일인데요? 막걸리 먹으로 오라고?”


“ 아니예요. 오셔서 말씀드려요.” 목소리가 급하다.


이상한 예감이 들었지만 김 이장이 이렇게 다급하게 전화를 한 적은 없었다.


“ 김 부장님 김 이장님이 빨리 오라는데요.?”


김 부장은 빙긋이 웃으며 특종이 있을지 모르니 빨리 가보라고 한다.


운전기사가 모는 차를 타고 나는 대성동으로 향해 달렸다.

싱그러운 외출이다.

들엔 3월의 소리가 들린다. 엊그제 내린 비로 초목이 짙게 물이 올랐다.


아직도 잔설이 응달진 곳에 남아있어 싸늘한 느낌이 든다. 그래도 들엔 봄내음이 물씬 풍긴다. 오전이라 대성동 마을은 아직 잠에 취해 있는 듯 했다.


“ 이장님 무슨 일인데 그렇게 급해요.?”


“ 오셨수. 큰일 났어요.”


“ 뭔 데 그래요?”


김 이장은 나를 끌고 자기네 외양간으로 간다.


“ 우리 집에 황소가 들어 왔어요. 김 기자님 이게 복 덩어리입니까 악 덩어리입니까?”


김 이장은 흥분이 되는 듯 말을 잘 잇지를 못한다. 외양간에는 두 마리의 소가 들어있다.


“ 김 기자님, 이놈 암소는 우리 소이고, 저놈은 그제 밤에 들어온 황소입니다.”


그런데 이상했다. 황소의 머리 뿔에 걸친 광목 띠가 목에까지 걸려 있다. 그런데 새빨간 글씨로 뭐라고 써있다. 좀 심각한 일이다. 이건 틀림없이 특종 감이다. 부장한테 의논을 해야 할 사항이었다.


나는 신문사 김 부장한테 전화를 했다.


“ 부장님, 좀 심각한 문제가 발생 했습니다.”


“ 뭔데?”


“ 특종입니다. 자유를 찾아 월남한 놈이 있습니다. 부장님이 오셔야겠습니다. 사진촬영 팀과 같이 오셔야겠습니다.”


“ 알았어.”


김 부장도 깊이 이야기를 안 해도 어느 정도 사항을 파악한 것 같다.


D.M.Z. 총격사건이 난 후 일주일 지나 군사정전본회의가 열렸다.

비무장지대를 평화적으로 이용하자는 유엔군 측의 제의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회담이 시작되기도 전에 북쪽 대표의 욕지거리가 터졌다.


“ 당신들이 한 짓이 아니면 누가 했겠소.”


기자들은 회담장 안에서 욕지거리가 튀어 나와도 별 신경을 쓰는 것 같지가 않았다. 회담은 항상 그런 식으로 치러지니까 양측 기자들은 판문점 뜰에서 오랜만에 만난 기자들 끼리 잡담을 하고 있다.


회담장 안에서의 회담 내용이 스피카를 통해 요란스레 들려온다.


“ 증거를 대시오.”


“ 증거야 있지요.‘


“ 증거를 내 보이시오.”


나는 회담장 창틈으로 머리를 비집고 들어 밀고 회담장 안을 훑어 보았다. 이상한 낌새를 챈 기자들이 회담장 창틈으로 몰려와 안의 분위기를 살폈다.


“ 증거를 보이지요.”


유엔군 수석대표가 손에 들고 있던 두툼한 흰 봉투를 책상위에 올려놓고 말을 했다.


“ 이게 증거요. 자 보시오.”


남 북 기자들의 눈빛이 흰 봉투로 쏠렸다.

사진 기자들은 순간을 놓칠세라 창틀에 매달려 카메라를 들이대고 흰 봉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 그게 뭐요?”


북측 대표가 의아한 그리고 불쾌한 표정으로 퉁명스럽게 소리를 지른다.


“ 보시다 시피 소똥 올시다.”


유엔군 수석대표가 빙그레 웃으며 흰 봉투를 풀어 놓았다. 봉투에서 소똥이 튀어 나왔다.


“ 소 똥 ? ”


회의장 창틀에 매달린 남 북 기자들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판문점 뜰에서 잡담을 하던 기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회담장 안의 장면을 취재하기 위해 창틀에 매달린 기자들 간에 싸움이 벌어졌다.


“ 동무 좀 비키라우.”


북측 기자가 막무가내로 창틀사이로 비집고 머리를 들어 밀어 넣는다.


“ 뭐야 이거, 신문에 내지두 않는 신문, 취재는 무슨 취재야.”


“ 머이 어드레, 야 너 맛 좀 보간.”


“ 맛은 이따 보고, 나 바뻐.”


소 똥을 본 회담장안의 북측 대표가 방방 뛴다.


“ 당신네들 회의를 하는거야 장난을 하는거야.”


“ 좀 기다려요, 또 보여줄게 있소.”


“ 또 뭐요. 우린 그런 ‘소 똥’ 같은 거 볼 필요 없소.”


북측 대표가 책상을 꽝 치는 소리가 들렸다.


테이불위에 설치된 마이크가 테이불 아래로 글러 떨어졌다. 테이불 밑에 글러 떨어진 마이크에서 쇳소리가 삑삑거리며 신음하고 있다.


“ 이번 사건의 주인공인 당신네 황소가 휴전선을 넘어 대성동 마을로 들어 온 것이요.”


“ 그거야 당신들이 조작한 거 아니요. 어디 황소가 한두 마리요.” 


“ 그러면 증거를 보여 드리죠.“


회담장 창문이 닫혔다. 회담장은 어둠으로 갇혔다. 준비된 영사기가 작동되기 시작했다.

김 부장이 촬영한 것을 유엔사 홍보부에 보낸 필름이다.


화면은 대성동 자유의 마을 전경을 비쳐주면서 카메라가 김 이장 집으로 이동한다. 짚단이 쌓인 외양간으로 카메라가 비친다. 암소가 꼬리를 친다. 옆의 황소가 여물을 먹고 있다. 푸근한 자세로 꼬리를 좌우로 흔드는 황소,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황소는 키메라를 의식했는지 넌지시 카메라를 쳐다본다. 카메라는 황소의 머리를 빨아드리며 크로스업 한다. 황소의 머리에 붉은 띠가 나타난다.


“ 그만. ”


황소의 머리가 화면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황소의 머리에 두른 띠가 선명하게 나타났다. 흰 바탕에 빨간 글씨로 쓴 글 “ 위대한 김일성 수령님의 생일에 바치는 선물. 샛골 협동농장 축산소. 4월 15일.” 로 쓰여 있다. 김일성 생일인 4월 15일을 경축하기 위해 보내는 기정동 마을에서 선발된 황소였다.


“ 그만 창문을 여시오.”


햇빛이 사각으로 회의장을 뿌렸다.

북측 대표들이 서로 귀속 말로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 좋소. 그러면 우리 황소를 돌려주시오.”


“ 그럴 수는 없소. 이제는 당신 황소가 아니요.”


“ 왜 안 되오.”


“ 당신들이 황소를 어떻게 하려는 것을 우리는 다 알고 있소.”


“ 무얼 어떻게 한다는 것이요.”


“ 자유를 찾아 온 황소의 의사를 존중하겠소.”


“ -------”


“ 우리는 황소가 안전하게 먹고 쉴 수 있는 축사를 지어주겠소,”


회의장은 침묵이 흘렀다. 이 사실은 보기 드문 톱뉴스였다.

비무장지대의 총격전에서 자유를 찾아 남으로 넘어온 황소였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황소가 비로 인해 함몰된 철책을 뚫고 넘어올 때 양측이 황소를 향해 총을 가한 것이다.


“ 그 엉터리 같은 소리 그만 하우.”


“ 당신네 협동 농장 황소가 철책 선을 빠져나와 임진강을 건너 자유를 찾아 온 것이요.”


“ 그 지역은 쥐새끼도 꼼짝 못하는 지뢰밭이요.”


“ 황소에게 신의 가호가 있었나 보지요.”


“ 신의 가호?”


북측 대표는 냉소를 지었다.


판문점 기자들은 몇 일전 총격 사건이 자유를 찾아 남으로 내려온 황소였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흥분했다. 이런 일은 휴전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기자들은 기사를 송고하느라 소란을 피웠다.

자유의 집 전화박스에 매달려 본사에 기사를 날렸다. 기자들 간에도 황소에 대한 이야기꽃이 피었다.


“ 황소가 어떻게 자유를 찾소?”


북쪽 기자가 심통 맞게 화를 낸다.


“ 왜 황소에겐 자유가 없소?”


“ 그건 당신들이 조작하는 자유요.”


“ 조작이라니, 굶어서 먹을 것이 없어 먹을 것을 찾아 죽을 각오하고 지뢰밭을 밞고 남으로 넘어 온 것이 조작이라니.”


“ 우리 북반부 소들은 그런 소들이 없소. 우리 소는 모두 혁명적이구, 전투적이요.”


“ 혁명적이구, 전투적이구 간에 먹어야 살지.”


“ 당신네들 사회하고는 통하지 않는 말이요.”


“ 황소에게도 선택의 자유가 있다는 것을 아오.”


“ 동무는 자유 자유 하는데 도대체 자유가 뭐요,”


“ 자유를 모르오, 자유는 자기 의지대로 행동하는 것이요.”


“ 동무는 황소가 의지가 있다고 생각하오.”


“ 황소의 의지란 보다 좋은 환경과 풍부한 먹이를 찾아 움직이는 것이요. 그게 본능이요. 의지요. 북이든 남이든 상관 않고 자기가 살기 좋은 곳을 찾는 선택의 의지가 바로 자유요.”


“ 우리 사회주의 나라에서는 그런 자유의지는 필요 없소.”


“ 그러니 지옥이지.”


“ 동무 말조심 하기요.”


회담장 안에는 계속 침묵이 흘렀다.


“ 좋소, 그러면 황소를 돌려주시오.”


북측은 거듭 황소의 송환을 요구했다.


“ 그렇게 할 수는 없소.”


“ 왜 없소.”


“ 당신들이 황소를 어떻게 하려는 것을 우리는 다 알고 있소.”


“ 무얼 억지를 부리오.”


“ 자유를 찾아 온 황소의 의사를 존중하겠소.”


“ -------”


“ 황소에게 배불리 먹고 일 할 수 있는 자유를 주겠소.”


황소를 돌려달라는 북측의 거듭 요구에 남측은 일언지하 거절했다.


그리고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양측 대표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회담장을 나갔다.



나는 몇 일간의 억눌렸던 긴장이 풀리는 것 같았다.


이미 신문에는 ‘ 자유를 찾은 황소 ’ 기사가 특종으로 뿌려졌다.


오늘 따라 대성동 김 이장님의 막걸리가 생각났다.


판문점 뜰을 걸어 나오면서 유난히도 파란 하늘을 바라보았다.


남측 자유의 집에서 한 마리의 비들기가 북측 판문각으로 비상(飛翔)하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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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4 박근혜대통령 탄핵소추는 절차상 하자이므로 위헌이다 [1] 一水去士 2017.01.24 192
283 새해를 열며- 계절을 위한 기도 - 차신재 Opening A New Year 영어자막 -유샤인 번역판 [1] YouShine 2016.12.28 192
282 아름다운 동행 제5부 - Heather의 결혼식 - 이영옥 글사랑모임 2016.12.26 192
281 아름다운 동행 제3부 - 라구나우즈의 동물들 이야기 - 이재윤 file 글사랑모임 2016.12.14 192
280 Amazonia 'Isolated' (Parts 1~5) - 순수 자연인의 생활모습 JohnPark 2016.06.13 192
279 [한국일보 뉴스] 라구나우즈 시니어들 ‘탈북자 지원’ 앞장 박승원 2016.03.06 192
278 "ARIRANG FESTIVAL" simsonyu 2019.08.22 191
277 차기 한인회장 추천 고영주 2019.05.12 191
276 새해 달력을 벽에 걸고 Dstone 2019.01.05 191
275 감사 Dstone1 2018.01.31 191
274 Orange County 韓.美 축제 재단 기금 마련 Golf 大會 한인회 2017.02.16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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