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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교수 영전에

서 경 선


  당신을 처음 만난 것은 1974년이었는지 75년이었는지도 기억되지 않는 오래전 일이었습니다. 당시 당신은 음악대학 교학과 조교를 하면서 대학원에 재학하고 있었고 군 복무를 필 한 뒤니까 20대 후반의 나이었을 것입니다. 당신은 나에게서 석사과정 필수 과목인 서양 음악사를 수강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음악대학의 행정은 매우 열악하여 조교였던 당신은 참으로 어렵게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대학원(석사과정)을 마친 후 New York으로 유학을 갔고 Mannes School of Music에서 Diploma 과정을 마쳤다는 소식을 전해 왔습니다. 당시 한국의 대학에서는 정원의 30%를 더 입학시켜 졸업에서 30%의 수만큼 탈락시키는 어처구니없는 제도를 시행하게 되었습니다. 전공 실기를 1:1로 수업하는 음악대학에서는 당장 전임교수가 더 필요한 상황이 되었고, New York에 머물고 있던 당신에게 간곡한 편지를 보냈었습니다. 제 편지에 귀국을 결심하여 귀국한 후(후에 당신이 제게 고백한 사실입니다. 다른 사람이 권했으면 귀국하지 않을 생각이었다고), 한양대학교에서 작곡과 교수로 동고동락하는 의미 깊은 시간이 1981년에서 2008년 2월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미안하게 생각하는 것은 당신이 귀국하던 첫 학기에 저는 Koeln(독일) Musikhochschule에 객원 교수로 떠나 있게 되어 P 교수, 당신께 드릴 말씀이 없었었습니다.


  음악대학의 교과과정 개편, 음악대학의 앙상블 수업에 관한 평가 방법, 교수들의 연구실적 평가 기준, 작곡과 전공 실기 과제 개편 등등, 너무나도 많은 행정상, 그리고 교육의 내용에 관한 대폭적인 개혁이 이루어져야 하는 시기가 도래했고, 우리는 정말로 열심히 심혈을 기울여 이 모든 일들을 해결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음악대학의 이런 일들은 작곡과 교수들이 중심이 되어 해결해 나갔으므로 다른 학과의 교수들이나 당시 행정 책임자인 학장과도 의견의 대립이 있을 수 있었고 이에 따른 성격의 불화 등은 자칫하면 아무런 해결점을 만들기 어려운 경우가 되기 쉬웠습니다. 이럴 때마다, P 교수, 당신은 그 특유한 부드러운 성품과 온유한 인격에서 비롯한 놀라운 설득력으로 그 괴팍한 예술가들의 집단인 음악대학 교수들 사이에서 서로를 이해시키는 화합의 일을 도맡아 했습니다.


  그러다가 7년을 근무한 뒤에 안식년을 받아 Los Angeles에 1년을 머물렀었지요? 그 1년 동안 저는 마치 암흑 가운데에 고립되어 답답함에 휩싸여 지냈었습니다. 혼자서 모든 일을 해야 했으며 의논할 동료가 없어서 얼마나 답답하고 아쉬웠는지 모릅니다. 당신이 다시 복귀했을 때에 그 안심되고 편안해졌던 제 마음을 아마 당신에게도 말씀드렸을 것입니다.


  특히 제가 학장으로 재직하는 4년 동안 P 교수, 당신의 전폭적인 지지와 도움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임기를 마칠 수 있었을지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저의 급하고 불같은 성격이 다른 분들께 오해를 사고 주위 사람들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 봐 옆에서 늘 근심하며 주의 깊게 살펴 충고하던 일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참으로 설득력 있는 권유로 여러 교수들과 엇나가지 않고 잘 지낼 수 있었습니다.


  어느 해인가 학생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300명을 이끌고 4개 도시 연주여행을 다녔던 일을 기억합니다. 버스로 이동하는 동안 무사히 다니도록 항상 기도하며 학생들을 통솔하시던 당신의 모습은 지금도 든든하고 생생합니다.

  학장 취임 후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음악대학 건물을 재건축하는 일이었습니다. 학교 본부에서는 오래된 건물들을 순차적으로 재건축해 나가는 과정이었는데 당신과 국악과의 Y 교수, 관현악과의 K 교수 등이 재빨리 재건축 설계도까지 작성하여 제시한 바람에 다른 대학의 차례를 제치고 음악대학의 건물에 냉난방 시설까지 새로 하는 큰 공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이 재건축 설계에 힘을 모았던 세 교수님들이 후에 모두 학장직을 맡아 학교 발전에 공헌하셨고 제가 제시한 여러 가지 개혁을 잘 마무리해 준 일도 고맙게 생각합니다).


  교내의 일 뿐 아니라 아시아 작곡가 연맹이란 국제기구를 통한 제 활동에서도 P 교수, 당신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제가 어떻게 본부 회장직을 수행할 수 있었으며, 한국에 유치한 두 번의 국제대회 및 음악제들을 그렇게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었겠습니까!

  한번은 당시 고령이시던 필리핀의 Dr. Kasilag 여사께서 연세대 백주년 기념관에서 음악회를 마친 후 계단에서 굴러 넘어지는 사고가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신이 이 일을 신속하고 안전하게 수습하고 잘 처리해 주어서 필리핀의 작곡가들이 얼마나 감사했던지요,


  봄학기가 끝나고 초, 중등 학교들이 방학하기 전 우리는 늘 작곡 전공의 대학원 학생들과 MT를 다녀 왔었습니다. 강의 중에 엄격하고 무섭게 훈련시키던 교수들과 평창 스키 리조트에서의 4박 혹은 5박의 합숙은 보통 강의실에서는 가질 수 없는 귀한 체험과 소통의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늘 당신의 학창 시절 나와의 관계들을 학생들에게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어려운 조교 시절 도저히 학업을 계속할 수 없어서 대학원을 포기하려고 했을 때 나의 충고와 배려로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고 고마워하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별로 길지도 않은 사제 관계였었지만(동료 교수의 관계가 내겐 더 소중하게 생각되었지만) 당신은 항상 제게 스승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보내셨고 저의 은퇴 즈음에서는 이제 스승이 모두 은퇴하셨다고 정말 허전해 하던 모습이 저를 뭉클하게 했습니다.


  P 교수, 당신의 청렴결백한 사고방식에서 나온 그 깨끗한 삶! 그리고 원칙을 지키는 엄격함 등등이 마지막 당신의 이 세상 떠나시는 길에서도 우리에게 놀라움과 감탄을 자아냈습니다. 전해오는 소식에서 당신은 백혈병으로 돌아가셨고 당신의 선친과 형님 한 분이 같은 병으로 세상을 뜨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병의 치료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잘 알고 있던 당신은 이 병을 진단받은 후, 부인 장 여사 외에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치료도 거부한 체, 홀로 투병하다가 떠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당신이 영락교회 장로님으로 대단한 신앙인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오직 하나님께 의지하며 견디어 지냈을 당신의 마지막 수년을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미어져 옵니다.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 장례에서 보이는 주위의 반응을 보면 이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 살았는지를 잘 알 수 있고 또 유족들은 이로 인해 많은 위로를 받는 경우를 저는 부모님의 상을 치르며 잘 겪었습니다. P 교수! 부인 장 여사와의 통화에서도 장 여사의 깊은 이해와 사랑, 그리고 당신에 대한 존경은 물론, 장례행사를 통해서 여러분들에게서 큰 위로를 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매년 한국을 방문할 때면 당신을 만나 작곡과 전 현직 교수들과 나누었던 즐거운 시간들이 이제는 다시 이 세상에서는 이루어 질 수 없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습니다.


  친애하는 P 교수, 이젠 아무 고통도 갈등도 없는 하늘나라에 가셨습니다. 평안히 쉬시고, 하나님께서도 칭찬하시며 당신을 맞이하셨을 것입니다. 당신처럼 결백하고 또 따뜻한 마음으로 이웃을 배려한 삶은 저뿐 아니라 당신을 사랑하는 주위의 동료 교수들, 그리고 당신을 존경하는 모든 제자들의 마음에 오래오래 살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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