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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외와 고향 맛

정 정 수


  재작년 여름 우연히 이민 온 분이 준 은천 참외 씨를 우리 채소밭에 뿌렸더니 꿈에서만 그리던 고향산천 참외넝쿨이 여기저기에 무성하게 뻗었다. 참외가 주렁주렁 열려 한 여름 신선한 은천 참외를 온 동네 한국 분들과 즐겁게 나누어 먹고 금년 봄에는 일찌감치 채소밭을 늘리고 모종을 해서 여기저기 수영장 주위와 화단 빈자리에도 심었더니 풍년이 들어 정말 많은 수확을 했다.


  7월 어느 날 잘 익은 참외를 몇 개 따다가 수영장 여기저기에 띄워놓고 둥둥 뜨는 노랑참외를 집어 이리 던지고, 저리 던지며 헤엄치다 보니 문득 그 옛날 개구쟁이 시절이 그리워 졌다. 맑은 산골 시냇물이 고여 깨끗한 자갈로 자연 웅덩이가 된 곳에 참외를 따서 띄워놓고 친구들과 어울리던 꿈에 도취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되풀이하고 있으니, 나의 추억을 모르는 우리 따님은 “Don’t be silly daddy.” 하고 핀잔을 주었다.


  사람의 미각이란 그 음식 맛 자체보다는 어릴 때 자라면서 먹어 온 그 성장 문화 배경이 더 많이 작용하는가 보다. 디트로이트에서 어렵게 수련 생활을 할 때 가깝게 지내던 우리 동문 부인이 임신을 해서 입덧을 했다. 내가 보기에는 시장에서 사 온 간 고등어가 신선하게 보이는데 도무지 미국 생선은 미국 냄새가 나서 못 먹겠다며 입도 대지 않았다.


  작년 여름에 유럽을 단체로 버스 여행을 하는데 회사 측에서 제공하는 아침은 continental breakfast로 빵 종류와 주스, 커피만 주었는데 우리 가족은 따뜻한 국 생각이 간절했다. 그런데 캐나다에서 온 한 부부가 드디어 반기를 들고 이웃 고급 식당에 가서 베이컨과 계란을 자기 돈으로 사 먹고 와서야 다시 활기를 띠게 되었다.


  금년에 애석하게도 돌아가신 우리 선배 한 분도 포코노 호숫가에 아름다운 저택을 지어놓고 훌륭한 아들딸을 키워가며 행복한 생활을 하면서도, 늘 아이들에게 옛날 경남 하동 고향의 아름다운 산천과 원두막에서 깎아 먹던 참외 맛을 그리워하셨다고 한다. 내가 한국에 처음 갔을 때도 정신을 차리자마자 우리 형님에게 이른 새벽에 차를 몰고 청진동 해장국 집으로 데려다 달래서 국 맛을 보고는 내가 그리워하던 그 맛이 아님을 알고, 우리가 찾는 것이 옛날 그 미각이 아니고 그 미각에 얽혔던 아름다운 정취를 그리워하고 있구나 하며 픽 웃어 버린 일이 있다.


  금년 여름에 우리 집에는 많은 한국 손님이 참외를 먹고 갔는데 예외없이 모두 감탄하면서 맛있게 먹었다. 그중에서도 알래스카 페어뱅크에서 놀러 왔던 우리 동기 동창 한 분은 2주일 휴가 동안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우리 집 참외를 실컷 먹고 싸 가지고 간 것과, 점심 때 정구를 치고 난 후 먹은 육개장 맛이었다고 부인께서 도착 즉시 편지를 보내왔다. 아마도 우리 집 참외와 육개장이 미국 스테이크나 잘 익은 허니듀보다도 절대적으로 맛이 있었다기보다는 그 육개장과 참외에 얽힌 아름다운 사연과 정취를 더 인상 깊고 맛있게 먹었을 줄 알고 있다.


  내가 이렇게 매일 몇 개씩 싫증을 내지 않고 먹고 있는 참외도, 내 고향 맛을 함께 곁들여 먹기 때문에 먹을 때마다 새 맛을 음미하게 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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