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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단편소설 - 철새 (1/3)

2019.08.16 10:48

김일홍 Views:195

단편소설                  

                                                                

 

하늘이 꾸물거린다.

비가 오려나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비가 올 것 같으니 오늘 골프는 쉬자는 전갈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몸살기가 있어 마침 잘 되었다 싶었다. 이참에 LA에 나가 미루었던 안경이나 맞출까 하고 차비를 했다. 빗길에 차 조심하라는 아내의 잔소리를 뒤로하고 집을 나섰다.

오랜만에 LA 나들이였다.

미국에 이민 온 이래 십 수 년 LA에서 살았다.

그러다 얼마 전 태평양 바닷가 근처 Laguna Woods 라는 노인들이 살기 좋다는 곳으로 주거를 옮겼다. 앞으로의 삶도 얼마 남지 않은 터여서 노후를 어떻게 보낼까 고심하다 한적한 곳에서 글이나 쓰며 조용히 지내고자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먼 거리의 LA에는 거의 나가지 않게 되었다.

올림픽 코리아 타운에 위치한 안경점에 들러 눈을 체크했다.

젊은 여자 검안원이 강렬한 빛으로 눈을 들여다보더니 눈이 많이 늙었다고 한다. 노인들의 노화는 제일 먼저 눈으로 온다고 하면서 조심하라고 한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하는데 눈이 늙어 침침하고 잘 보이지 않으니 마음도 어두워지는 것 같다. 가끔 가까이에서도 사람의 얼굴을 식별하기가 어려워 실수를 할 때가 많다. 이제는 안경 없이는 뭐 하나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런데 속상한 것은 자주 안경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치매도 아닌데 말이다.

일주일 후에 안경을 찾기로 하고 안경점을 나섰다.

너무 일찍 일을 끝냈나, 갑자기 할 일이 없어 허망했다. 시간적으로 가장 애매한 오후 두 시경. 오랜만에 LA에 왔으니 집으로 돌아가기는 뭐하고 그렇다고 친구를 불러내 낮부터 술잔을 기울이기에는 너무 이르고 하여간 늦은 점심이나 할까 망설이다 오래 전 한국의 대통령이 먹고 갔다는 설렁탕 집으로 갔다. LA는 주차장 때문에 애를 먹는데 주차장은 텅 비어 있었다. 식당 앞에 차를 세우고 안으로 들어갔다. 점심시간이 지난 후라 식당은 한산했다. 식당 안쪽 모서리 테이블에 손님이 달랑 3명 앉아 있다. 나는 설렁탕을 시켜 놓고 옆자리에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신문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느낌이 이상했다. 누군가가 나의 뒷 목덜미를 끌어당기는 느낌이었다. 무의식적으로 안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그런데 그 쪽에서 한 사나이가 나를 유심히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의 시선과 눈길이 마주쳤다. 나는 흉측한 것을 보기나 하듯 갑자기 눈길을 돌렸다. 안 볼 것을 본 것 같아 꺼림직했다.

사나이는 나를 계속해서 힐끔 힐끔 쳐다보며 머리를 갸우뚱하는 모습이 보였다.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저 친구가 왜 그러나 하고 나도 슬쩍 쳐다보기는 했으나 좀 두려웠다. 그러지 않아도 LA라는 곳이 하도 엉뚱한 일이 벌어지는 곳이라 조심을 해야 한다. 미국이란 나라는 다민족이 사는 곳이라 별의 별 예기치 않는 일들이 많이 벌어진다. 길을 가다가도 눈길만 마주 쳐다보아도 총알이 날아온다는데 내가 자청해서 총알을 맞을 리 없고 하여간 머리를 박고 신문만 보았다. 그 때 설렁탕이 나와 나는 설렁탕에 집중했다. 설렁탕을 거지반 먹고 있는데 안쪽 테이블 사나이가 일어서더니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나는 놀라 사나이를 보며 나도 모르게 몸을 뒤로 제겼다. 그 사이 무엇인가 확인을 했는지 사나이의 모습은 당당했다. 나에게 가까이 다가와 허리를 굽혀 인사 비슷하게 하고 사나이는 내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는 것이었다. 나는 마치 왕 거미가 나의 얼굴로 기어오르는 듯 징그럽고 싸늘한 전율을 느꼈다. 사나이는 두 손을 마주 잡고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혹시, 한국분 아니세요?

사나이는 몸을 흔들면서 말했다. 목소리의 톤이 특이했다.

“네! 그런데요.

나는 경계를 하면서 대답했다.          

“너무 같아요. 혹시 한국에서 무얼 하셨지요?” 

분명 이 사나이는 나에게 무얼 찾으려는 듯했다.

그래서 나의 과거직업을 묻는 것이다. 나는 불쾌했다.

미국에 온 이래 이런 일은 처음 당하는 일이다. 오랫동안 미국에서 살면서 나의 과거 직업을 묻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나 또한 나의 과거 직업을 말할 필요도 없었다. 오늘 이 사나이가 나의 과거를 묻고 있는 것이다. 나는 잠자코 있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만 혹시 서울 남산 밑 남청 빌딩에서 근무하신 일 없으세요?

사나이는 점점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놀랬다. 어떻게 이 사나이가 남청빌딩을 알고 있을까? 사나이는 집요했다. 나를 물고 늘어지는 자세가 먹잇감을 놓치지 않으려는 하이에나 같았다. 나는 당황했다. 그리고 호기심도 발했다. 나의 얼굴에서 무엇인가 찾았는지 사나이는 화색이 돌았다.

“맞습니다. 맞아요. 조정관님이 맞아요.

사나이는 자기가 말하고 자기가 답했다. 나는 맥이 탁 풀렸다. 말은 안 했지만 뭐가 맞아 하는 의문의 반응을 얼굴로 표시했다. 난해한 퀴즈의 답을 풀었을 때처럼 긴장감이 풀리면서 나른해지는 느낌이 몰려왔다. 그런데 갑자기 무언가 느낌이 왔다. 오래 전 귀에 익은 사나이의 음성으로 희미하게 사나이의 정체를 판독할 수가 있었다.

“조정관님, 정말 반갑습니다.

사나이는 와락 나의 손을 잡고 감격스러운 듯 손을 흔들었다.

나와 비슷한 나이거나 좀 위인 사나이는 힘이 넘쳤다. 사나이가 조정관이라는 말에 순간 나는 사나이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최 송 식!

나는 얼떨결에 맞장구를 쳤다.

                          

어쩌면 그렇게 빨리 사나이의 이름이 튀어나올 수가 있을까? 최송식이란 이름이 오랫동안 뇌 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나 보다. 이렇게 해서 30여 년 만에 미국 땅 외지에서 친구라기엔 뭣한 최송식이란 사나이를 만났다.

 

남청빌딩은 정보부의 안가(安家). 남산 바로 밑 아스토리아 호텔 근처의 5층 빌딩 건물이다.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골목에 숨어 있어 뭘 하는 곳인지 아는 사람들이 별반 없었다. 나는 그 당시 정보부직원으로 남청빌딩에서 종사하는 일반 사람들을 관리하는 조정관이었다. 당시 북한의 정보를 통제했던 시기에 어느 정도 북한을 알리는 장소이기도 했다.             

빌딩 안에는 층마다 내외통신, 북한연구소, 극동문제연구소, 자유평론사 단체가 속해있었다. 맨 아래층은 북한의 노동 신문, 등대 잡지 등을 볼 수 있는 자료실로 북한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이 방문했다. 당시로서는 북한의 정보를 알리는 데 일조를 한 곳이기도 했다. 그 중 5층의 자유 평론사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반공교재를 만들어 전국 초. . 고등학교에 공급을 했다. 반공교재를 만드는 데는 북한 실상을 잘 아는 사람들이 글을 써야 하기 때문에 대개 북한에서 남으로 내려온 북한 사람이거나 간첩으로 남파되었다가 자수를 한 사람들이 집필자였다. 사무실 안에는 북한 각지의 짙은 사투리가 오고 가 여기가 남한인지 북한인지 착각할 정도로 북한 냄새가 풍겼다.

 

내가 최송식을 처음 만나기는 8월 초 어느 날 찌는 듯 더위에 모든 사람들이 지쳐 나른해 있을 오후였다. 수위실에서 인터폰이 울렸다.

오수에 취해 있던 나는 수화기를 들었다.

“조정관님을 찾아온 분이 여기에 와 있는데요.

수위가 보고했다.

                            

“누군데?

“강 국장님이 보내서 왔다는데요.

강 국장은 나의 직속상관이다. 강 국장은 나에게 아무런 연락 없이 업무를 맡길 때가 많았다. 그래서 나는 항상 당황했다.

“올라 오라구 해.

나의 사무실은 6층 옥상이다.  창고를 리모델링을 해서 옥탑 방 사무실로 쓰고 있었다. 그래서 사무실은 무척이나 더웠다. 잠시 후 사나이가 나타났다.

“최 송 식이라 합니다.

목소리의 톤이 굵었다.

“앉으시죠. 무슨 일로 왔습니까?

나는 자리를 권하고 그자가 내미는 봉투를 받았다. 봉투 속에는 이력서가 들어 있었다.

이름은 최송식. 나이는 35. 고향은 황해도 신천. 학력란은 비어 있었다.

나는 간첩으로 자수를 했거나 북에서 온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글을 좀 써 보았습니까?

반공 교재를 쓴다면 글을 좀 쓸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기야 이렇게 오는 자들은 그저 자리를 하나 마련해 주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나의 질문은 건성으로 넘어갔다.

“글은 잘 못 쓰고 연설은 좀 합니다.

사나이는 긴장을 하는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고 느껴 수위에게 북한 교재 편집실에 자리를 하나 만들어 놓으라고 지시했다. 이렇게 해서 최송식이라는 사나이가 반공교재 편찬위원으로 임명되어 남청빌딩으로 출근하게 되었다. 그런데 최송식은 글을 쓰기 보다는 밖으로 나다니며 반공 강연을 주로하고 있었다. 북한 실정을 알리는 반공 강사로 이름을 날렸다. . 고등학교를 비롯, 국가 공공단체를 순회하며 강연을 했다.

북한에서 연설을 많이 했는지 말 자체가 연설 스타일이라 강연을 곧잘 하는 것 같았다. 반공 강연을 하러 나갈 때에는 담당 경찰이 차로 데리러 왔다. 최송식은 사무실을 나갈 때나 들어올 때는 꼭 나에게 보고를 했다. 편집실에 근무하는 교재 편집위원들은 대부분이 간첩으로 남파되었다가 전향한 사람들이라 항상 주시를 해야만 했다. 당시 이수근 사건도 있고 해서 나는 이들의 동향 파악을 하고 있었다.

나는 최송식을 간첩 출신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좀 특이한 인물이었다. 나는 점차 최송식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최송식은 이수근 때문에 망했다고 푸념을 늘어놓곤 했다.

북에서 남으로 탈출해서 얼마 안 되어 이수근이가 판문점으로 넘어오는 바람에 자신의 북으로부터 의거 탈출이 빛을 보지 못하고 묵살되었다는 것이다.

 

장마가 꽤나 오래 지속될 것 같았다. 사무실 창 넘어 쏟아지는 장대비를 바라보다가 나는 인터폰 키를 눌렀다. 비도 오고 무료하니 최송식을 불러 차라도 한잔할까 해서였다. 실은 그에 대한 궁금한 것도 많고 알고 싶은 것도 있고 해서였다. 인터폰을 받고 최송식은 기다렸다는 듯이 한 발에 나의 사무실로 달려왔다. 무슨 일로 불렀는지 하명을 하라고 내 앞에 서있었다. 나는 비도 오고 하니 커피나 한잔 하자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그랬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그러지 않아도 조정관님을 모시고 저녁을 한번 먹으려고 했는데 비도 오고 속도 출출한데 충무로 복국 집에서 한잔하자고 달려들었다. 나는 남청빌딩 일반 직원들하고는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러지 않아도 남청빌딩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조정관인 나에게 잘 보이려고 접근을 시도하곤 했다. 그렇다고 문제가 될 것은 없지만 나는 이들과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마음의 문을 여니 얼씨구나 하고 기다렸다는 듯이 최송식은 저녁 약속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나와 최송식은 충무로 복국 집을 찾았고, 보글보글 끓는 복국 냄비를 가운데 두고 처음 마주앉았다.

몇 잔의 소주가 오고 간 뒤 최송식은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빗줄기는 계속해서 양철 지붕을 때리고 있었다.

“조정관님 이거 사람 사는 것이 아니야요.

최송식은 한숨을 푹 내 뿜으며 말했다. 나는 직감적으로 간첩의 본성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고 긴장했다.

“그게 아니구요. 나는 간첩이 아닌데 간첩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간첩이 아니면 나는 의아했다.

“나를 이수근이와 동급으로 취급하면 안 되지요. 나는 엄연히 의거 탈북자입니다.

“의거 탈북자!

나는 아리송한 눈으로 최송식을 바라보았다.

“조정관님 내 말 좀 들어 보시라요.

최송식의 고향은 북한 지역인 황해도 신천이다. 일제 강점기에 소작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10살에 해방을 맞았는데 아버지가 소작인 출신이라 북한 공산 치하에선 출신 성분이 좋은 편이다. 당에 충성심만 발휘하면 출세할 수 있는 토대가 되어 있었다. 게다가 최송식은 활달한 성품에 같은 또래의 아이들에게 앞장서기를 좋아했다. 싸움도 잘했다. 신천의 건달패들 하고도 어깨를 견줄 만했다. 웅변을 잘해서 학교에서도 인기가 좋았다. 최송식은 신천 학교를 졸업하고 신천 전기사업소에 들어가 근무를 했는데 성실한 면이 있어 전기사업소 지도원 동무한테 신입도 얻었다. 잘만하면 대학에 갈 수도 있고 노동당에 들어가 출세의 길도 열려있었다.

최송식은 신천 여학생들에게도 인기가 좋았는데 그 중 마음에 담아둔 여자가 있었다. 학교 때 점 찍어 놓은 차분하고 얌전한 여학생이었다. 나약하게 보였지만 잔잔한 미소를 짓는 그녀에게 마음이 쏠려 사랑을 했다. 첫눈에 반했고 생명을 바쳐서라도 사랑을 하리라 다짐을 했다. 그렇게 해서 사랑을 얻었다. 그런데 사랑하는 여인이 북한에서 반동으로 배척받는 목사의 딸이라는 사실을 후에 알게 되었을 때 최송식은 실의에 빠졌다. 예수쟁이 딸하고 결혼하면 안 된다고 주위에 반대가 심했다. 최송식은 이 모든 것을 운명으로 돌렸다. 당보다 사랑하는 여자를 택했다. 얼마 후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을 했다. 당에서 허락하지 않는 결혼으로 인해 최송식은 전기사업소를 떠나야만 했다. 신천 협동농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지난 날 찌들게 가난했던 농사꾼의 아들로 다시 돌아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반대를 해도 어머니는 아들의 편이었다. 저녁 해가 기울어 농사일을 마치고 지친 몸을 끌고 돌아오는 아들을 어머니는 동네 언덕 위 느티나무 아래서 항상 기다렸다. 두 손을 들고 빨리 오라고 손을 흔드는 어머니의 마음은 애틋했다. 느티나무에 걸린 저녁노을이 어머니의 얼굴에서 빛났다. 어머니의 얼굴은 천사 같았다고 최송식은 말하곤 했다. 협동 농장의 농사꾼이라도 최송식은 행복했다. 어머니가 있고, 아내가 있어서였다. 아내가 첫 아이를 가졌을 때 아내는 영양실조로 쓸어졌다. 먹지를 못해서였다. 먹을 것이 없어서였다. 아내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최송식은 비참한 마음을 어디다 하소연할 수가 없었다. 그 때 어머니가 연못과 논두렁에 나가 개구리를 잡아 며느리에게 삶아 먹였다. 아내는 개구리를 먹고 첫째와 둘째를 낳았다. 개구리의 효과로 아내는 건강을 찾았다. 그 후로 최송식은 협동 농장 일을 마치고 나면 나무 꼬챙이를 들고 논과 연못으로 가서 개구리 사냥을 했다. 그러다 보니 개구리를 잡는 귀신이 되었다. 그때 어머니가 개구리를 잡아 아내를 먹이지 않았다면 아마도 아내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으리라.

협동 농장에서 평생 농사꾼으로 살기에는 너무나 비참했다.

고향에 정붙이고 살길이 막연해 원산 시 당 비서로 있는 집안 형님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당 비서의 권력이면 최송식의 지난날의 과오도 숨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형님의 도움으로 최송식 가족은 원산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형님이 최송식의 손재주를 알고 있어 원산 선박수리 사업소 선반 수리공으로 일터를 알선해 주었다. 최송식은 살길은 오로지 당에 충성하며 성실하게 일을 하는 것이라 생각 했다. 그사이 두 아이들도 성장해서 인민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최송식은 이제야 사람 사는 것 같다고 행복에 겨웠다.

어느 날 원산 시 당 간부가 최송식을 호출했다. 긴장했다. 과거의 전력이 들통 나지 않았나, 아내가 목사의 딸이었다는 사실이 항상 머릿속에 따라다녔기 때문이다. 그건 기우였다. 당 간부는 최송식에게 새로운 사업을 지시했다. 당에서는 새 사업은 가족같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맡아야 하기 때문에 최송식을 추천한다고 했다.

최송식은 가슴이 벅찼다. 자신이 인정받았다는 데에 대한 희열이었다. 새로운 사업은 다름 아닌 원산 시 당 간부들의 낚시 배를 관리하는 일이었다. 당 간부들은 틈틈이 배를 타고 원산 앞바다에 나가 바다낚시를 하며 즐겼다. 인민들의 눈을 피해 낚시 배를 비밀리에 운영하고 있었다. 가끔 평양에서 고급당원이 내려오면 접대용으로 낚싯배를 항시 대기해 놓고 있었다.

최송식은 당 간부들에게 충성하면 노동당에 입당하는 데 좋은 기회가 되리라 생각했다. 북한 사회에서의 출세 길은 오로지 노동당에 입당하는 길 밖에 없다. 북한에서 노동당 입당은 제일 먼저 출신 성분이다. 친일을 했거나, 5정보 이상의 지주였거나, 예수교 신자였다면 그것은 입당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래서 북한 주민들은 이러한 것들을 숨기고 입당을 하려고 애를 쓴다. 목사의 딸인 아내를 소작인 출신으로 둔갑시켜 노동당 입당 원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오늘 내일 당에서 소식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최송식 가정에 뜻하지 않은 절망의 사건이 일어났다. <2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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