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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박목월씨 (1916-1978)는 연세로 보면 나의 아버님 뻘이 되며 아버님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분이다. 만일 누군가가
1946년 (이 詩가 출판된)에 태어났다면, 그는 지금 67세,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가된다. 나에게는 1946년에 골목 길바닥에서
구슬치기하던 철없는 소년이였을 때가 된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아버지가 된지 오래며 어쩌다 보니 할아버지가 된지도 오래다. 다시
말해서 구름에 달 가듯이 세월이 그리 많이 흘러간 것이다. 세월만 흘러간 것이 아니고 세상도, 인생도, 또 생활철학도 상상 못했듯이 무척
흘러갔다.
김원호 시인은 "구름에 달가는듯 함"을 유유자적(悠悠自適)하게 걸어간 세월의 흐름으로 봤건만,
나에게는 그 시절이 정신없이 분주하게 뛰어갔던 험한 인생의 흐름처럼 느껴진다. 아마 나는 시인이 아닌, 생존경쟁과 아귀다툼에
분주했던 직업인 때문이 아닐가? 돌이켜 보건대, 나는 행운유수(行雲流水)처럼 현실을 초탈하고
세속의 욕망을 버리고 살었던 때가 한번도 없는듯하다. 詩評을 쓴 시인에게는 세월의 흐름이 평야를 소리없이 흐르는 잔잔한 강이였고,
나에게는 산골짜기를 내려오는 거칠고 시끄러운 여울이였던것 같다.
인생과 사회를 보는 눈과 느끼는 마음은 상대적인것이다. 일제의 잔혹한 억압에서 방금 해방된 1946년의 한국은, 비록 혼란하기 짝이
없을 때였건만 박목월 시인에게는 그가 오래 기다렸던 축복된 "술익는 마을"이였을거다. 그 사람보다는 시대를 훨씬 더 잘타고 태어난
나에게도 언젠가 "술익는 마을"이 찾어왔다. 바로 내가 지금 살고있는 은퇴촌 Laguna Woods가 그것인 셈이다. 나에게도 늦게나마 유유자적에
행운유수의 기회가 드디어 찾아온 모양이다. 현실을 초탈하여, 세속의 욕망을 버리고 체념해서 살수있는 기회가 온것이다. 그러나,
과연 내가 그렇게 살수있을가? 아니면 과연 내가 그렇게 살기를 원할가? 자본주의 사회에 너무나 깊히 물들은 나에게 無所有의 개념이
실현되기가 지극히 어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좋건 나쁘건, 그렇게 살건 못살건, 그에게나 나에게나 궁극적인 운명은 같은것....
우리는 모두 "구름에 달가듯이 가는 나그네" 임에 틀림없다. 70여년전에 쓰여진 한술의 詩가, 예나 지금이나 가슴에 느껴지기는
다름이 없는것같다.
그 시인의 詩를 다시 한번 읽으며, 내 맘속에서는 또 다른 詩가 흐른다.
저멀리 어디엔가 언제인가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 우리는 바다 건너 먼 타향의 먼지 사막길 거친 구름속에 달 가듯시 살아왔던 나그네 길은 같은 외줄기 길, 그러나 우리는 낫선땅
9만리 술익는 마을에서 조용히 맞이하는 얼마남지 않은 황혼의 빛 그와 함께, 구름속에 지는 달처럼, 가는 나그네.... 아!
강나루 건너서 그 밀밭 길이 언제 어디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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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를 읽으며...
시인 박목월씨 (1916-1978)는 연세로 보면 나의 아버님 뻘이 되며 아버님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분이다.
만일 누군가가 1946년 (이 詩가 출판된)에 태어났다면, 그는 지금 67세,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가된다.
나에게는 1946년에 골목 길바닥에서 구슬치기하던 철없는 소년이였을 때가 된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아버지가 된지 오래며 어쩌다 보니 할아버지가 된지도 오래다.
다시 말해서 구름에 달 가듯이 세월이 그리 많이 흘러간 것이다.
세월만 흘러간 것이 아니고 세상도, 인생도, 또 생활철학도 상상 못했듯이 무척 흘러갔다.
김원호 시인은 "구름에 달가는듯 함"을 유유자적(悠悠自適)하게 걸어간 세월의 흐름으로 봤건만,
나에게는 그 시절이 정신없이 분주하게 뛰어갔던 험한 인생의 흐름처럼 느껴진다.
아마 나는 시인이 아닌, 생존경쟁과 아귀다툼에 분주했던 직업인 때문이 아닐가?
돌이켜 보건대, 나는 행운유수(行雲流水)처럼 현실을 초탈하고 세속의 욕망을 버리고
살었던 때가 한번도 없는듯하다.
詩評을 쓴 시인에게는 세월의 흐름이 평야를 소리없이 흐르는 잔잔한 강이였고,
나에게는 산골짜기를 내려오는 거칠고 시끄러운 여울이였던것 같다.
인생과 사회를 보는 눈과 느끼는 마음은 상대적인것이다.
일제의 잔혹한 억압에서 방금 해방된 1946년의 한국은, 비록 혼란하기 짝이 없을 때였건만
박목월 시인에게는 그가 오래 기다렸던 축복된 "술익는 마을"이였을거다.
그 사람보다는 시대를 훨씬 더 잘타고 태어난 나에게도 언젠가 "술익는 마을"이 찾어왔다.
바로 내가 지금 살고있는 은퇴촌 Laguna Woods가 그것인 셈이다.
나에게도 늦게나마 유유자적에 행운유수의 기회가 드디어 찾아온 모양이다.
현실을 초탈하여, 세속의 욕망을 버리고 체념해서 살수있는 기회가 온것이다.
그러나, 과연 내가 그렇게 살수있을가?
아니면 과연 내가 그렇게 살기를 원할가?
자본주의 사회에 너무나 깊히 물들은 나에게 無所有의 개념이 실현되기가 지극히 어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좋건 나쁘건, 그렇게 살건 못살건, 그에게나 나에게나 궁극적인 운명은 같은것....
우리는 모두 "구름에 달가듯이 가는 나그네" 임에 틀림없다.
70여년전에 쓰여진 한술의 詩가, 예나 지금이나 가슴에 느껴지기는 다름이 없는것같다.
그 시인의 詩를 다시 한번 읽으며, 내 맘속에서는 또 다른 詩가 흐른다.
저멀리 어디엔가 언제인가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
우리는 바다 건너 먼 타향의 먼지 사막길
거친 구름속에 달 가듯시 살아왔던 나그네
길은 같은 외줄기 길, 그러나 우리는 낫선땅 9만리
술익는 마을에서 조용히 맞이하는 얼마남지 않은 황혼의 빛
그와 함께, 구름속에 지는 달처럼, 가는 나그네....
아! 강나루 건너서 그 밀밭 길이 언제 어디였나.
2013년 3월, 一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