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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WV 행복도시: 공감의 마을

                                                                                           이 영 범   

  오래 전의 일이다. 나의 가까운 친지 K 교수가 중국에서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새벽 세 시에 소식을 들은 그의 아내는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얼마후 마음을 간추리고 교회를 갔으나 그날 따라 앞을 가릴수 없는 눈물만이 계속 흘러나왔다. 얼마전 남편을 잃은 같은 처지의  여인이 옆에 다가와서 "믿음이 모자라서 그래요." 라는 조언을 하여 주었다. 위로의 의도 였을 것이나 그 말은 듣는이에게 거부감과 함께 우럭  화를 치밀어 오게 하였다.  권사님은 자신의 말이 그런 결과를 초래하리라곤 예상치 못했겠지만 그런 일들이 세상에서는  자주 일어난다.   어려운 분을 보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은 인간의 본능에 가깝다. 권사님의 경우도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무슨 말이라도 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문제는 우리들은 이런 극한 아픔을 겪는이에게 무엇이 적절한 말인지 잘 배우지를 못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가지게 되는 편견이 하나의 잣대가 되어 조언과 충고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권사님에게는, ‘나는  그 슬픔을 이겨냈는데…’, 라는 나름의 잣대가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한국 정신과 의사가 지어낸 용어에 충조평판  이라는 말이 있다. 고와 언에 조심하고 정을 멀리하라는 뜻이겠다.우리는 슬픔이나 갈등으로 마음의 고통을 받는 이에게 충고나 조언은 금물이라 생각하며 그 충조의 유혹을 물리쳐야 할 것이다.

밤 열시가 넘도록 길거리를 헤매며 집에 돌아가기를 꺼려하는 학생이 친구에게 마음을 달래보려고 전화를 걸었다. ”너 왜 집에 안들어가니? 부모님이 걱정 할 텐데 빨리 돌아가.” 라고 친구는 충고해 주었다. 하지만 부모님이 매일 싸움으로 집안이 시끄러운 것을 친구가 알 리 없다. 그런 집구석에 들어가고 싶지 않은 이 청년에게는 친구의 충고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그러면 무슨 대안이 있을까?  충고와 조언의 반대편에 “공감” 이라는 보물이 있다. 이 공감 이라는  말은 의견을 공감 한다는 말보다  그 때 느끼는 감정을 공감해 주는 것을 말한다. 그 공감은 아픈 마음을 시원하게 치유해주는 청량제가 된다.

이 학생에게 누군가가 손을 내밀고 물어 본다. ”너 무슨 일이 있니? 무슨 걱정이 있니?”  어떻게 하라는 방향 제시가 아닌 걱정하는 마음으로 다가오는 이 말은 청년과의 인간적 거리를 좁힌다.  그러나 사람들은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도 충고와 조언을 한다. 내면을 모르면 먼저 물어야 한다. 상대를 진실로 알고 싶어하고 그를 인정하며 관심을 가지면 그의 가슴을 녹이는 질문이 나온다. 그 질문은 상대방의 마음을 열게하며 숨겨두었던 힘든 이야기를 나오게 한다. 이때 “그런 일이 있었구나. 얼마나 아팠니.” 라는 공감적 표현은 상대방을 스스로의 힘으로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내 마음을 진정으로 받아주고 나를 온전히 이해하려드는 한 사람이 있으면 내 삶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공감의 힘은 이렇게 위대한 것이다. 진정한 공감은 “나” 라는 존재 자체를 편견없이 받아주는 것이기에 아파하고 허물어져가는 나를 치유하고 내 안에 남아있던 행복의 작은 불씨에 불을 붙이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공감은 자격을 인정받은 꼭 전문가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 것이다.  드라마에 나오는 호떡집 할머니도, 이웃집 아저씨도 누구나 아픈 마음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관심과 인내심을 가지고 충조평판 을 멀리하는 마음만 있으면  될 것이다.  (심리학자)

밤 열시가 넘도록 길거리를 헤매며 집에 돌아가기를 꺼려하는 학생이 친구에게 마음을 달래보려고 전화를 걸었다. ”너 왜 집에 안들어가니? 부모님이 걱정 할 텐데 빨리 돌아가.” 라고 친구는 충고해 주었다. 하지만 부모님이 매일 싸움으로 집안이 시끄러운 것을 친구가 알 리 없다. 그런 집구석에 들어가고 싶지 않은 이 청년에게는 친구의 충고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그러면 무슨 대안이 있을까?  충고와 조언의 반대편에 “공감” 이라는 보물이 있다. 이 공감 이라는  말은 의견을 공감 한다는 말보다  그 때 느끼는 감정을 공감해 주는 것을 말한다. 그 공감은 아픈 마음을 시원하게 치유해주는 청량제가 된다.

이 학생에게 누군가가 손을 내밀고 물어 본다. ”너 무슨 일이 있니? 무슨 걱정이 있니?”  어떻게 하라는 방향 제시가 아닌 걱정하는 마음으로 다가오는 이 말은 청년과의 인간적 거리를 좁힌다.  그러나 사람들은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도 충고와 조언을 한다. 내면을 모르면 먼저 물어야 한다. 상대를 진실로 알고 싶어하고 그를 인정하며 관심을 가지면 그의 가슴을 녹이는 질문이 나온다. 그 질문은 상대방의 마음을 열게하며 숨겨두었던 힘든 이야기를 나오게 한다. 이때 “그런 일이 있었구나. 얼마나 아팠니.” 라는 공감적 표현은 상대방을 스스로의 힘으로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내 마음을 진정으로 받아주고 나를 온전히 이해하려드는 한 사람이 있으면 내 삶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공감의 힘은 이렇게 위대한 것이다. 진정한 공감은 “나” 라는 존재 자체를 편견없이 받아주는 것이기에 아파하고 허물어져가는 나를 치유하고 내 안에 남아있던 행복의 작은 불씨에 불을 붙이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공감은 자격을 인정받은 꼭 전문가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 것이다.  드라마에 나오는 호떡집 할머니도, 이웃집 아저씨도 누구나 아픈 마음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관심과 인내심을 가지고 충조평판 을 멀리하는 마음만 있으면  될 것이다.  (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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